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여성가족부가 여성폭력을 방지하고 성평등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정책목표를 올해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 담지 않으면서, 여가부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가부는 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약자에게 더 따뜻하고 안전한 사회 조성 △저출산·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미래인재 양성 △촘촘하고 든든한 지원을 위한 사회서비스 고도화라는 3대 목표가 담겼다. 이번 업무 추진계획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여성폭력과 관련한 정책목표를 언급한 대목이 없다는 점이다. 여가부는 앞선 정책목표에서 △여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2021년) △성기반(젠더)폭력으로부터 보다 안전한 사회(2022년) 등 여성폭력 방지를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세부 과제에서도 ‘여성폭력’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가부는 3대 목표 아래 △다양한 가족 지원 △아동·청소년 보호 △5대 폭력 범죄피해자 지원 확대 △함께 돌보고 일하는 사회 △청소년 미래 인재 육성 △가족·청소년 지원 서비스 혁신 등 6대 핵심 과제를 설정했다고 밝혔다. 가정폭력·성폭력을 겪은 남성 피해자 보호시설을 처음으로 설치하겠다는 등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과제는 마련했지만, 여성폭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이를 해결하겠다는 내용의 과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성평등’도 찾아볼 수 없다. 여가부는 2021년에는 ‘다함께 누리는 성평등사회 실현’, 2022년에는 ‘모두가 체감하는 성평등 사회 구현’ 등의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번에는 성평등과 관련한 목표는 담기지 않았다. 이기순 여가부 차관은 ‘여가부 정책목표와 핵심과제에 성평등과 관련한 정책이 없다’는 지적에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과 직업훈련 과제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여가부는 ‘함께 돌보고 일하는 사회’ 정책 과제 세부 내용에서 20~30대 여성에게 미래유망·고부가가치 직업교육훈련을 확대하고, 경력단절 가능성이 큰 여성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기순 차관은 ‘성평등 정책’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들기도 했다. 이 차관은 8일 열린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에서 “유엔 기구와 같이 협력하는 방안, 공적개발원조 사업으로 우리의 성평등 기반을 동남아시아 등, 우리보다 성평등이 저조한 국가에 확대하는 과제들이 담겨있다”고 했다. 여가부는 ‘유엔 여성 성평등센터’를 통한 글로벌 교육·연구·파트너십 확대 및 개도국(인도네시아, 몽골 등) 여성 역량 강화를 위한 공적개발원조(ODA)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언급한 것이다. 또 가족정책도 일종의 성평등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성평등 사회 실현과 여성폭력 방지가 여가부의 존재 이유인 만큼 이를 정책목표로서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성평등 사회 실현이라는 방향성이 목표나 과제에 언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부 과제에만 관련 내용이 포함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여성에 대한 차별을 ‘비가시화’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가 드러난 결과”라고 말했다.
한편, 여가부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저소득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지원 대상을 이달부터 기준중위소득 60% 이하 가구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기준중위소득 52% 이하 가구에서 지난해 10월 58% 이하로 확대된 데 이어 60% 이하로 다시 확대되는 것이다. 자살·자해 등의 위기에 놓인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 발굴·지원 시스템도 구축된다. 이밖에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온라인 상의 성착취·성폭력 목적의 ‘그루밍’(길들이기) 처벌 대상을 오프라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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