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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착취물 산업’ 설계자가 고작 징역 5년?”…양진호 형량 반발

등록 2023-01-12 18:14수정 2023-01-13 01:57

1심 징역 5년 선고에 여성단체 등 기자회견
12일 낮 11시께 수원지법 성남지원 앞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와 연대하는 활동가와 여성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고은 기자
12일 낮 11시께 수원지법 성남지원 앞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와 연대하는 활동가와 여성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고은 기자

“‘웹하드 카르텔’을 제대로 처벌하라! 방조범이 웬말이냐, 정범으로 처벌하라!”

12일 낮 11시께 수원지법 성남지원 앞에는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와 연대하는 활동가와 여성단체가 모였다. 웹하드 카르텔을 구성해 성착취물 등 불법유통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에 대해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어처구니 없는 형량”이라며 재판부를 비판했다.

이날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합의1부(강동원 부장판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유포 및 방조), 업무상 횡령, 조세범처벌법 위반, 저작권법 위반 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양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또한 재판부는 양씨가 운영한 웹하드 업체 등 2곳에 조세포탈로 인한 조세범처벌법 위반 등으로 벌금 합계 3억7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웹하드 업체와 필터링 업체 등 8개 자회사의 실질 경영자로서 음란물 유포 등 행위와 관련돼 있다”면서도 “피고인이 회사에 대해 저지른 횡령, 배임 등의 범죄 피해는 상당 부분 회복된 점과 피해 회사가 사실상 피고인의 1인 회사인 점을 고려하고, 종전에 판결이 확정된 사건과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며 양형 사유를 밝혔다.

여성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성남여성의전화 등은 “웹하드 카르텔을 온라인 성착취 산업구조로 보지 않으면 근절할 수 없다”며 재판부가 ​양씨를 웹하드 카르텔의 주범으로 보고 중형을 선고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양씨가 ‘음란동영상’을 다수 업로드해 판매자 자격이 취소돼야 하는 판매자에 대해 그 자격을 유지시켜주고, ‘음란동영상’ 업로더를 ‘우수회원’으로 선정해 아이템을 지급”했는데도 검찰과 재판부가 양씨를 방조범으로만 봤다고 지적했다. 또 △‘음란동영상 헤비업로더 보호시스템’ 운영했다는 점 △필터링을 최소화하고 불법정보를 우선 노출, 불법정보의 삭제 최소화 운영방침을 세웠다는 점 △웹하드 카르텔로 인한 처벌을 피하고자 ‘바지사장’을 뒀다는 점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전체 매출 중 70%가 ‘음란물’로 인한 수익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12일 낮 11시께 수원지법 성남지원 앞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와 연대하는 활동가와 여성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고은 기자
12일 낮 11시께 수원지법 성남지원 앞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와 연대하는 활동가와 여성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고은 기자

당초 수사기관이 웹하드 카르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발언자로 나선 웹하드 카르텔 최초 제보자 이선희 다큐멘터리 감독은 “엔(n)번방의 박사 조주빈조차 범죄단체구성죄로 처벌되는 마당에 지난 십수년 동안 수십만 건의 디지털 성착취물을 유통하고 범죄자 헤비업로더의 불법행위를 알선·주도한 양진호에게 검찰은 징역 14년, 벌금 2억원, 추징금 514억을 구형했다”며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며 구조적인 방식으로 행한 그의 불법행위는 성폭력처벌법, 정보통신망법, 업무상 횡령 등을 뛰어 넘어 범죄단체조직죄로 처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와 연대해온 연대자 디(D) 반성폭력활동가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검찰이 법리 적용을 할 때 웹하드 카르텔을 범죄단체로 규정하지 않았고, 재판부 역시 기술 등과 관련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였다”고 꼬집었다.

단체는 온라인 성착취를 뿌리 뽑기 위해선 웹하드 카르텔을 온라인 성착취 산업구조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공소 내용과 판결 내용을 보면 ‘음란물’과 ‘저작재산권’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웹하드를 통한 성착취와 성폭력의 문제는 삭제되거나 축소되고, 나아가서는 왜곡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령 ‘음란물’에 집중하다 보면, 어떤 영상이 ‘음란물’인지에 대한 여부를 성기노출 여부로 판가름하기 때문에 성기가 노출됐느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는 등 엉뚱한 쟁점으로 귀결된다는 게 단체의 설명이다. 이들은 “성착취 산업구조로 접근하지 못했기에 지금껏 웹하드 카르텔을 근절하지 못한 것”이라며 “검찰에 즉각 항소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양씨는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직원들에 대한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이 확정됐다. 또 배임 및 근로기준법 위반 등으로 추가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지난 2018년 11월16일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지난 2018년 11월16일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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