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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평화 중재·마음 치유 ‘젤리 문화’ 한국에 전하고 싶어요”

등록 2023-01-16 19:11수정 2023-01-17 02:35

[짬] 부르키나파소 이주민 아미두 디아바테

아미두 디아바테가 아프리카 전통 악기인 발라폰을 연주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아미두 디아바테가 아프리카 전통 악기인 발라폰을 연주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아미두 디아바테(41)는 서아프리카 국가인 부르키나파소 이주민이다. 올해로 9년째 경기 부천 와이엠시에이(YMCA)가 운영하는 송내 청소년센터(관장 조윤령)에서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그간 가르친 수강생이 천 명이 넘는다.

센터에 개설된 과목도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만드는 ‘마을음악창작단’, 학생들과 농사 체험을 하면서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가르치는 ‘애니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춤과 노래를 즐기고 발표도 하는 ‘몸놀이 마음놀이’, 발달장애 학생들과 드럼 등 타악기를 두들기는 ‘이색오케스트라’ 등 다섯 개나 된다. 그가 서아프리카 베냉 출신 이주민 다니엘 아히폼과 함께 이끄는 ‘아프리카 댄스 수업-아프리카로 만나는 자유’는 4년 이상 수강을 이어가는 가족도 있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디아바테는 한국인 아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서울 은평구 증산동 시장통에 2년 전부터 ‘아프리카음악 젤리 문화 연구소, 티아모뇽’을 열어 직장인 등 6~7명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젤리’(프랑스어로 그리오)는 음악으로 종족의 역사나 설화를 알려주고 종족이나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중재하기도 하는 서아프리카 음악가 가문 사람들을 칭한다. 그는 부르키나파소 소수종족인 시아무족 73대 젤리이다. 연구소 이름 ‘티아모뇽’은 시아무족이 쓰는 시암어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가 사랑하는 젤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가득 담긴 이름이다.

지난 13일 센터에서 조윤령 관장과 함께 디아바테를 만났다. 조 관장은 디아바테의 교육 성과 등이 밑돌이 되어 올해 처음으로 부천시에서 아프리카 예술교육 예산 2천만원을 책정했고 관내 학교 네곳도 따로 예산을 세웠다고 귀띔했다.

아프리카 전통 악기 은고니를 연주하는 아미두. 그는 이 악기를 부르키나파소에서 들여온 나무와 가죽으로 직접 만들었다. 한국에서 연주나 수업 때 쓰는 악기는 모두 그가 직접 만든단다. 강성만 선임기자
아프리카 전통 악기 은고니를 연주하는 아미두. 그는 이 악기를 부르키나파소에서 들여온 나무와 가죽으로 직접 만들었다. 한국에서 연주나 수업 때 쓰는 악기는 모두 그가 직접 만든단다. 강성만 선임기자

디아바테는 2020년 고향 마을인 오로다라에도 티아모뇽을 세워 한국인 후원자들과 함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해 오로다라에 터도 마련해 티아모뇽 건물을 신축 중이다. 그는 올해로 한국살이가 딱 10년이다. 2012년 경기 포천의 아프리카예술박물관 공연자로 한국에 왔다가 저임금과 인권 침해로 힘든 시간을 겪고 귀국한 뒤 2014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2년 뒤에는 가정도 꾸려 6살 아들이 있다.

그가 좋지만은 않았던 한국을 다시 찾은 데는 “한국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젤리 문화를 나누고 싶어서”란다. “저도 (한국에서) 다른 문화를 배워서 우리의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알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젤리 문화’란? “젤리는 종족의 왕이 종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하는 사람들이죠. 요즘 식으로 ‘미디어’ 기능이죠. 또 젤리 문화에는 경찰이 필요 없어요. 사람들끼리 다툼이 있으면 젤리를 부르거든요. 젤리가 서로의 말을 듣고 다독거리고 각자 잘못을 지적하면 싸움이 끝나요. 왕이 젤리에게 그런 힘을 부여했고 사람들도 젤리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에게 나쁜 일이 생길 거라 두려워해서죠. 결혼식이나 장례도 젤리가 주관하고 농사지을 때도 옆에서 노래로 힘을 불어넣어요.”

결혼 중매도 젤리의 일인데 디아바테도 고향에 살 때 모두 10쌍의 결혼을 성사시켰단다. 73대 젤리로서 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어제도 제가 중매한 친구 한 명이 인터넷 전화로 연락해 ‘최근 아기가 생겼다. 고맙다’고 했어요. 지금도 고향에서 저한테 조언을 요청하는 전화가 계속 걸려와요. 한국에서도 젤리 일을 계속하고 있죠.”

대대로 서아프리카 전통음악가 가문
소수종족인 시아무족 73대 ‘젤리’
2012년 공연왔다가 2년 뒤 재입국
부천 송내청소년센터 9년째 강습

증산동에 젤리 연구소 ‘티아모뇽’
“한국 돌아다니며 야외공연하고파”

그의 고향 마을에는 현재 형제자매와 조카들까지 디아바테 대가족 80여명이 살고 있다. 아직 자체 건물이 없어 노천에서 교육이 이뤄지는 티아모뇽 학교에서 그와 같은 73대 젤리인 사촌 형과 형제들이 동네 아이들에게 전통음악을 가르치고, 대학을 나온 그의 친구들은 자원봉사로 프랑스어와 영어를 가르친단다. 민속음악전승관과 일반 학교의 기능을 함께하는 셈이다.

“제가 어렸을 때는 소나 기계의 도움 없이 농사를 지어 일할 때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노래를 잘 몰라요. 그래서 사라지는 전통 노래들을 가르치고 그 자료도 모으죠.” 문해수업 등 학교 교육까지 하는 것은 학교에 다니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란다. “저 때만 해도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면 제대로 살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의무 교육이 아니라서 학교 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아미두 디아바테와 청소년 제자들이 부평 풍물축제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조윤령 관장 제공
아미두 디아바테와 청소년 제자들이 부평 풍물축제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조윤령 관장 제공

아미두 디아바테가 송내 청소년센터에서 마을음악창작단 수업을 하고 있다. 조윤령 관장 제공
아미두 디아바테가 송내 청소년센터에서 마을음악창작단 수업을 하고 있다. 조윤령 관장 제공

아미두와 아이들이 만든 노래 가사가 센터 벽에 걸려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아미두와 아이들이 만든 노래 가사가 센터 벽에 걸려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그 역시 학교는 다니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지금은 고인이 된 ‘72대 젤리’ 부친에게 집중적으로 젤리 수업을 받았다. “매일 아침 아버지에게 5분이나 10분씩 우리 종족의 역사를 배웠어요. 사람들을 화해시키거나 그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들려줄 삶의 지혜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배웠죠.” 조 관장은 디아바테가 수업 중 학생들의 나쁜 행동에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고 전했다. “가해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반발하지 않으면서 제 잘못을 받아들이도록 타이르는 능력이 있더군요.”

‘평화 중재자’이자 ‘마음 치유사’이기도 한 젤리의 시선에 비친 한국 사회는 어떨까? “한국에 좋은 거 많아요. 사람들은 똑똑하고, 자녀들을 잘 돌보고 법에 대한 존중이 있어요. 그런데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다 같이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같이 즐거우면 좋은 데요.” 그는 한국과 자국의 결혼 문화를 견줬다. “결혼은 살면서 가장 기쁜 날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딱 1시간만 하더군요. 제 고향에선 결혼식이 있으면 일주일 내내 사람들이 모여 기뻐하면서 춤추고 노래합니다. 한국은 또 가까운 사람 결혼식에도 (축의금을 낼) 돈이 있는 사람만 가죠. 젤리 문화에선 그렇지 않아요.”

아프리카 이주민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에 그동안 변화는 있냐고 하자 그는 “조금 좋아졌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집도 없이 동물들과 같이 산다고 생각하더군요. 지하철 타면 옆 사람들이 다 도망갔어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요즘도 지하철 타면 자리에 잘 앉지 않아요. 한번은 앉으려고 하니 옆 사람이 ‘어, 깜짝이야’라며 놀라더군요. 그래서 ‘친구, 미안하지만 나 동물 아니에요. 사람이라 지하철 탔어요. 이렇게 하면 좋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도 다른 나라에 많이 살아요. 우린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줬죠.” 그의 말에 어떤 답이 돌아왔을까?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코로나 오기 전 한국 곳곳을 다니며 공연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디아바테에게 앞으로 계획을 묻자 “노래를 만들어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야외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은 야외에서 춤추고 노래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바로 신고가 들어가 경찰이 옵니다.”

그의 조국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으나 여전히 정치는 불안하고 국민은 빈곤하다. 고국에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하자 그는 “교육”이라고 답했다. “예전에는 못 배워도 평화롭게 살았지만 지금은 국민이 똑똑해야 정치 지도자들을 잘 뽑을 수 있어요. 썩은 정치인들은 가려내고요. 1980년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 상카라(1949~87)는 집권 시절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평등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 사람이 다시 나와야 하는데 (상카라가) 암살당한 뒤로는 주로 프랑스가 심어 놓은 사람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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