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행정안전부가 이태원 참사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실이 24일 확인됐다. 이태원 참사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고 비판받는 행안부가 유사 재난 및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사마저 손놓으며 사실상 재난 총괄 기능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 제69조를 보면 행안부는 재난 발생시 대응 과정에 대한 조사, 분석, 평가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재난원인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단순히 조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기관에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를 하고 이후 이행사항을 점검하는 등의 조처를 통해 반복된 사고를 막기 위한 제도다. 재난원인조사는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었거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꾸려진 경우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됐으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역시 구성됐다. 하지만 행안부는 경찰 수사가 있었다는 이유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재난안전법 시행령에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든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복수의 기관에서 동시에 같은 건에 대해서 조사할 필요는 없다.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조사했기 때문에 별도의 조사는 불필요하다. 재난안전법에 의한 재난원인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별도의 재난원인조사가 실시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가 있어도 조사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또 다른 관계자는 “(재난원인조사를 규정한 관련법) 제69조도 ‘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조사 자체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수사를 이유로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행안부의 해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행안부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총 31건의 재난원인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재난원인조사 목록을 보면 대부분이 검·경 수사가 이뤄진 사례였다. 2020년 2월17일 발생한 순천-완주간 고속도로 사매2터널 교통사고의 경우에도 경찰 수사가 있었지만 행안부는 재난원인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전남 남원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 등 혐의로 6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으며, 제설 미비 등 도로 관리에 업무상 과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경찰 수사결과가 재난원인조사를 대체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재난원인조사가 실시되면 행안부가 각 관계 기관의 개선권고 사항 이행을 지속해서 점검할 수 있지만, 경찰이 이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전문가 위원으로 참석한 이동규 동아대 재난관리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경찰 수사와 정부 차원의 재난원인조사는 성격이 다르다. 재난원인조사가 있어야 이행점검과 제도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며 “사소한 사건이나 사고라도 재난 원인과 관련된 교훈이나 개선점 등을 기록하고 관리하기 위한 재난원인조사의 상설화,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복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10·29 이태원 참사 대응 테스크포스팀 단장은 “수사는 법적 책임만 확인하는 것이다. 재난안전관리법에 명시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정부의 행정적 책임 등은 따지지 않았다. 더구나 경찰 특수본은 행안부에 면죄부를 줬다. 이런 상황에서 재난원인조사마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참사 당시에도 책임지지 않았던 행안부가 참사 이후에도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 물류창고 화재 등 대형 인명 피해가 있을 때마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했던 행안부가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냐”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난 업무를 총괄하는 행안부가 계속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진상규명기구가 꾸려질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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