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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버지 숨진 쪽방서 아들마저…서류상에선 ‘눈감지 못한 부자’

등록 2023-01-26 05:00수정 2023-01-26 13:21

사망신고 안 된 ‘무연고 사망자들’
4개월 사이 연이어 숨진 채 발견
구청이 공영장례식 치르고도
법적의무인 사망신고 하지 않아
지난 6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김진수(가명)씨와 김씨 아버지가 살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한 쪽방. 아버지가 숨진 뒤 4개월 만에 김씨도 같은 자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지영 기자
지난 6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김진수(가명)씨와 김씨 아버지가 살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한 쪽방. 아버지가 숨진 뒤 4개월 만에 김씨도 같은 자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지영 기자

2021년 10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13㎡(4평)도 채 안 되는 차디찬 쪽방, 김형식(가명·78)씨가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그 옆에는 함께 살던 아들 김진수(가명·당시 47)씨가 앉아 있었다. 몇달째 보이지 않던 부자가 걱정됐던 집주인 아들 강아무개(55)씨가 강제로 현관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아들 김씨는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곰팡이가 슬어 새까매진 장판과 벽, 햇볕이라곤 들지 않는 낡은 창문, 먼지 쌓인 옷가지들과 그릇들. 먹을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숨을 끝으로 시간이 멈춰버린 쪽방에서 김씨는 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었다.

“평소에도 아들 정신이 온전하진 않아 보였는데, 그날 소방관들이 아버지 태워서 갈 때도 아들은 나와서 따라가지도 않더라고. 그 뒤로 아들이 한동안 집에도 없고 사라졌어.” 김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아버지 주검을 구청에 위임했고, 김씨가 사라진 사이 구청은 아버지 공영장례(지방자치단체 지원 장례)를 치렀다. 아버지 사망 두달여 만에 집에 돌아온 김씨는 기초생활 수급으로 받은 주거비로 밀린 두달치 월세 60만원을 강씨에게 건넸다. 강씨는 “몸이 불편했던 아버지가 아들 대신 간간이 일을 나가는 것 같았다. 이전엔 밖에서 담배라도 피우던 아들이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선 더욱 집에만 머문 것 같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떠나고 4개월이 흐른 지난해 2월, 어두운 저녁에도 불을 끈 채 두문불출하던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에도 강씨가 발견했다. 4개월 전 아버지가 숨을 거둔 쪽방 한쪽 그 자리였다. 사인도 아버지와 비슷한 급성심근경색으로 추정됐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구청이 치른 그의 공영장례식을 찾는 이는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데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가 숨지면서 그의 장례를 치러줄 연고자는 아무도 없었다. 부자는 같은 쪽방에서 4개월 사이 나란히 ‘무연고 사망자’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사망신고가 안 된 ‘무연고 사망자’ 김형식(가명)씨 부자에게 여전히 날아들고 있는 각종 고지서. 박지영 기자
사망신고가 안 된 ‘무연고 사망자’ 김형식(가명)씨 부자에게 여전히 날아들고 있는 각종 고지서. 박지영 기자

그러나 김씨 부자는 여전히 주민등록상으로는 살아 있다. 특히 아버지는 숨진 뒤 해가 두번 바뀌었지만 지금도 전기요금을 청구받고 있다. 아들에게는 숨지기 전 적발된 금연구역 흡연 과태료 10만원에다 사망 이후 36.6% 체납 가산금까지 붙어 13만6600원이 청구되고 있었다. 구청에서 장례까지 치러주고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아 ‘죽은 사람’에게 밀린 과태료를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계속 보내온 것이다.

25일 <한겨레>는 지난해 말부터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은 자치구인 서울 영등포구청이 ‘이(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 공고한, 2021년 7월부터 지난해 10월 사이에 숨진 무연고 사망자 41명 가운데 집이나 길에서 숨진 16명을 추려 사망신고 여부를 일일이 추적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숨질 경우 사망신고가 안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6명 중 9명은 사망신고가 이뤄졌지만 김씨 등 7명(43%)은 신고가 누락된 상태였다. 취재가 시작되자 구청은 그중 2명의 사망신고를 했다. 1명은 끝내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혈연 가족이 있어도 주민등록상 ‘살아 있는’ 무연고 사망자도 있었다. 지난해 8월 영등포구 당산철교 밑 한강 수면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대우(가명·55)씨의 경우가 그렇다. 경찰이 이씨의 주검을 부검했지만, 술에 취해 있었으며 사망 당시 코로나19에 확진된 상태라는 것만 확인됐다. 타살 혐의점은 없었다.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친누나와 형은 ‘형편이 좋지 않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겠다. 향후 고인과 관련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문서 이름조차 섬뜩한 ‘시체포기각서’를 경찰에 냈다. 결국 그의 공영장례식에 찾아온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이씨가 떠난 뒤 세 들어 살던 다세대주택 지하 쪽방 ‘103호’에는 냉장고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옆집·윗집에 사는 사람도 “얼굴도 본 적 없다”고 할 정도로 이웃들과도 교류가 없었다. 종종 술에 취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횡설수설 말을 쏟아내는 게 유일했다. 집주인 ㄴ씨는 “나한테 전화를 할 정도로 대화할 사람도,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찾은 사망신고가 되지 않은 이씨 집 앞 우편함에는 ‘휴대폰 미납요금 독촉장’,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자격취득 신고서’ 등이 꽂혀 있었다. 주민센터에서는 여전히 이씨의 집에 쌀을 갖다주고 있었다. ㄴ씨는 “주민센터에서 이씨가 죽은 걸 몰랐는지 쌀을 갖다놓았길래 ‘이제 안 갖다주셔도 된다’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주민등록상 ‘살아 있는’ 무연고 사망자 이대우(가명·55)씨가 생전에 살던 다세대주택. 채윤태 기자
주민등록상 ‘살아 있는’ 무연고 사망자 이대우(가명·55)씨가 생전에 살던 다세대주택. 채윤태 기자

사망신고가 안 된 이들은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1인 가구였고, 결혼하지 않거나 이혼해 자녀는 없었다. 이씨처럼 일부는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주검을 구청에 위임했다. 이들은 최장 2년 가까이 사망신고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의를 제기할 유족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나눔과나눔에서 공영장례를 지원한 서울 무연고 사망자 1072명 가운데 비혼이 509명으로 절반 가까이(47.5%) 차지했고, 이혼한 경우가 342명(31.9%)이었으며, 배우자 있음은 82명(7.6%)밖에 안 됐다.

신원이 확인된 6명이 사망신고가 안 된 이유는 모두 자치구 예산 때문이었다. 사망신고를 하려면 의사가 발급한 사망진단서(시체검안서)가 필요한데, 한건당 30만원가량 드는 비용이 예산으로 책정되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다. 무연고 사망 처리 예산엔 장례비 외에는 진단서 발급 같은 비용은 책정돼 있지 않다. 전국적으로 주민등록상 사망하지 못한 무연고 사망자는 최근 1년9개월(2021년 1월~2022년 9월) 사이에만 302명에 이른다. 전국 무연고 사망자 7399명 중 4%가 서류상으로 죽지 못한 것이다. 영등포구 사례처럼 ‘예산이 없어서’라는 이유 말고도 다른 지자체에서는 ‘법을 몰라서’ ‘시간이 부족해서’ 등의 이유를 댔다.

2021년 7월26일 세상을 떠났지만 1년 반이 지나도록 사망신고가 안된 최성훈(가명·52)씨가 살던 서울 영등포구의 한 여관. 현재는 재개발로 인해 폐쇄된 상태다. 채윤태 기자
2021년 7월26일 세상을 떠났지만 1년 반이 지나도록 사망신고가 안된 최성훈(가명·52)씨가 살던 서울 영등포구의 한 여관. 현재는 재개발로 인해 폐쇄된 상태다. 채윤태 기자

사망신고는 한 인간이 걸어온 삶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행정 절차다. 국가가 무연고 사망자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공영장례를 통해 가족이 없더라도 애도받을 권리는 보장하고 있지만, 그들이 주민등록상으로 사망할 권리까지는 완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라도 사망신고를 할 연고자가 없는 그들이 150살, 200살까지 ‘주민등록상’으로만 장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서류상 죽음이 누락된 이들에게는 죽어서도 과태료와 고지서, 쌀 등이 날아왔다. 최악의 경우엔 아무도 찾지 않는 무연고 사망자의 사정을 악용해 연금을 가로채거나 신용카드 등으로 빚을 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무연고 사망자의 사망신고가 누락되는 문제는 10년 전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법 개정으로 2014년부터 지자체장이 무연고 사망자의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 것으로 개정됐는데, 신고가 누락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지자체가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신고 안 된 ‘무연고 사망자들’ 어떻게 취재했나

“실례지만, 지난해 ○월까지 여기 살다 돌아가신 ○○○씨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무연고 사망자의 주소지를 무작정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대부분 돌아온 답은 “잘 몰라요. 얘기해 본 적도 없어요”였다. 가족을 끝내 찾지 못했거나, 가족이 주검 인수를 포기한 이들의 흔적을 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망신고가 안되고 있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개별 무연고 사망자의 사망신고 여부 확인조차 어려웠다.

<한겨레>는 전국 현황 파악부터 시작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2021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무연고 사망자 현황 통계를 입수해 사망신고 및 공고 건수 등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무연고 사망자가 1년9개월간 200명으로 가장 많고, 사망신고 누락 건수(65명) 역시 가장 많은 기초자치단체인 서울 영등포구를 선정했다.

지난해 말부터 영등포구청이 ‘이(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 공고한 2021년 7월부터 지난해 10월 사이에 숨진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집이나 길에서 숨진 16명을 추려 일일이 행적을 추적했다. 사망자의 주소지에 찾아가 집주인, 이웃 등을 탐문했으며, 구청과 동주민센터, 경찰서 등 행정기관을 취재해 사망신고 여부 등을 확인했다. 이들의 공영장례를 지원한 나눔과나눔을 통해 그들의 마지막을 지킨 가족이 있었는지 등도 취재했다.

이들은 대부분 고시원·쪽방, 여관 ‘달방’에 혼자 거주했으며, 일부 거주지는 재개발 등을 이유로 폐쇄되기도 했다. 특히 외국인을 취재할 때는 등록된 주소지가 실제와 다르거나, 요양원이나 공장으로 주소지가 되어있는 경우도 많아 추적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들의 마지막을 그나마 기억하는 집주인, 이웃 등을 주로 만났지만 교류가 없어 가족이 있는지 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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