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2월이면 또 새로 계약”…투잡 뛰는 비정규 스포츠 강사들

등록 2023-01-26 08:00수정 2023-01-26 08:30

새해 소망 “걱정 없이 아이들과 뛰고 싶어요”
충남지역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들이 지난 16일 홍성의 충남도서관 앞에서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며 활짝 웃고 있다.
충남지역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들이 지난 16일 홍성의 충남도서관 앞에서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며 활짝 웃고 있다.

“아이들과 걱정 없이 뛰어놀고 싶어요.”

지난 16일 충남 홍성 충남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충남 초등 스포츠 강사의 현실과 사회적 기대 콘퍼런스’에서 만난 스포츠 강사들의 2023년 새해 소망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다.

초등 스포츠 강사는 학생들한테 인기 좋은 선생님이지만, 법적으로는 교사가 아닌 이중적 존재다. 체육수업의 전문가이지만 ‘수업 보조’의 역할로 국한한 법령에 의해 불안한 비정규직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조사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만족도 평가에서는 늘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지만, 매년 재계약에 목을 매야 한다. 정체성의 혼란에 박봉, 불확실한 미래 등 약자의 위치에 있다. 대회장에서 만난 한 스포츠 강사는 “아이들과 주당 20시간 이상 체육 활동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14년간 매년 계약 갱신을 할 때가 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등 더블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체육교육 전문가인 이들은 대개 중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학교체육진흥법에서는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의 역할을 “정규 체육수업 보조” “스포츠 클럽 지도”로 제한하고 있다. 충남도의 113명을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에 배치된 1800여 스포츠 강사들의 처지는 비슷하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김택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은 “정규 체육수업과 방과 후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은 모두 전문적 지도가 필요한 영역이다. 초등교원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스포츠클럽은 지도할 수 있지만, 정규수업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1~2학년은 독립된 체육교과가 없다. 통합교육이라는 형태로 사실상 1~2학년에서 체육을 실종시킨 유일한 나라다. 이런 조건에서 전국 6천여 초등학교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1800여 학교에 배치된 스포츠 강사들은 아이들에게 체육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최일선 지도자의 구실을 하고 있다.

초등 체육의 부실은 학부모 발언에서도 나온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한 학부모는 “3학년이 된 아이가 체육 정식교과 시간표를 보고 기쁜 마음에 학교에 갔다가 체육 선생이 없어 체육 안 했다고 투정할 때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런 초등학교 환경에서 스포츠 강사는 체육 공백을 메워주는 구실을 한다. 하지만 고용 불안정으로 인한 박탈감은 크다.

김대환 충남스포츠강사연합회장은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일해 왔고 평가도 좋게 나오고 있는 것은 스포츠 강사의 직무능력이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동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말만 나오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발목만 잡고 희망 고문만 시켰다. 열정 페이만 요구하지 말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규직 교사들도 스포츠 강사의 근무 여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날 토론자로 나온 한 교사는 “2월 말이 되면 스포츠 강사들은 계약서를 새로 써야 한다. 1~2년이면 모를까 10년 넘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수업할 때 스포츠 강사의 도움을 많이 받는데, 이미 학교 내 대부분 직종에서 정규직화가 이뤄진 만큼 이들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밝혔다.

충남지역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 교사, 학부모 등이 지난 16일 충남도서관 강당에서 초등학교 체육 정상화를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
충남지역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 교사, 학부모 등이 지난 16일 충남도서관 강당에서 초등학교 체육 정상화를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

또 다른 교사는 “열악한 처지의 스포츠 강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초등학교 남녀 교사의 성비 구성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 수업할 때 교구를 이동해 준비해야 한다. 수업에 큰 도움을 주는 스포츠 강사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체육 지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초등 스포츠 강사 제도의 출범은 초등학교 학생의 체육 활동 강화의 필요성과 일자리 창출 등을 고려해 이뤄졌다. 하지만 재정 등 장기적 전략 없이 시행되면서 문제가 드러났지만, 당국인 교육부나 문체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학교 운동부 지도자들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추세여서 초등 스포츠 강사들의 소외감은 커지고 있다. 물론 전남교육청은 초등 스포츠 강사를 무기직으로 전환했고, 다른 시·도 교육청에서도 뒤따를 조짐을 보인다.

정현우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원은 “스포츠 강사들이 경험과 실적, 전문성 측면에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애초 교사직으로 출발한 게 아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일단 이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직업 안정성을 갖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또 이들의 역할을 단순히 수업 보조만으로 국한하지 않고, 초등학교 체육교과나 스포츠클럽 활성화에 실질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일과 위상을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23년 새해에는 스포츠 강사들이 가슴을 활짝 펴고 꿈을 펼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홍성/글·사진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민주주의 망가질 것 같아서”…서울 도심 거리 메운 10만 촛불 1.

“민주주의 망가질 것 같아서”…서울 도심 거리 메운 10만 촛불

[영상] ‘윤 대통령 거부권’에 지친 시민들의 촛불…“광장 민심 외면 말라” 2.

[영상] ‘윤 대통령 거부권’에 지친 시민들의 촛불…“광장 민심 외면 말라”

12월 첫날 큰 추위 없고 종일 구름…제주·중부 서해안엔 비 3.

12월 첫날 큰 추위 없고 종일 구름…제주·중부 서해안엔 비

‘TV 수신료 통합징수법’ 국회 소위 통과에…KBS 직능단체 “환영” 4.

‘TV 수신료 통합징수법’ 국회 소위 통과에…KBS 직능단체 “환영”

오세훈, 동덕여대 시위에 “기물 파손, 법 위반”…서울시장이 왜? 5.

오세훈, 동덕여대 시위에 “기물 파손, 법 위반”…서울시장이 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