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인출책을 체포하기 위해 보낸 체크카드인 줄 모르고 이를 대리인출하기 위해 가지고 있었다면, 범행 대가로 수수료를 받기로 약속한 이상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에게 해당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ㄱ씨는 2020년 8월 성명불상자 ㄴ씨가 온라인에 올린 ‘하루에 100만원 이상 벌어가실 분’ 광고를 보고 ㄴ씨를 접촉했다. ㄴ씨는 “조건만남 피해자를 협박해서 받은 돈이 들어있는 체크카드 2개가 있다. 이를 받아서 돈을 인출해주면 인출금의 10%를 주겠다”고 제안했고, 이를 수락한 ㄱ씨는 퀵서비스 기사에게 체크카드를 넘겨받았다. 그런데 ㄱ씨가 돈을 인출하기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하던 중 현장에 잠복 중이던 경찰이 나타나 ㄱ씨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알고 보니 ㄱ씨가 받은 체크카드는 경찰이 보낸 것이었고, ㄴ씨가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대리인출 해준다’는 광고를 본 ㄷ씨가 ㄴ씨에게 인출을 맡기는 척 의뢰한 뒤 경찰에 제보한 것이었다. ㄱ씨는 ‘대가를 약속받고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접근매체(체크카드)를 보관했다’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ㄱ씨의 혐의를 유죄로 봤지만, 2심은 무죄로 판단했다. ㄱ씨는 ‘인출행위’에 대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기로 한 것이지, ‘보관행위’를 대가로 돈을 받기로 한 게 아니기 때문에 “대가를 약속받고 접근매체를 보관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사건에 이용된 체크카드는 경찰 등이 ㄱ씨를 붙잡기 위해 준비한 것이지 실제로 범행을 계획했던 물건이 아니므로 “ㄱ씨의 행위는 범죄이용을 목적으로 접근매체를 보관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 2심 판단이 엇갈린 상황에서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불법적 행위의 대가로 체크카드를 보관하고 있었다면 유죄라 볼 수 있으며, 실제 범죄가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타인 명의의 금융계좌를 불법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 대가를 약속하고 접근매체를 보관한 경우라면 접근매체 보관에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을 약속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ㄱ씨가 받기로 한 수수료가 보관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가 아니라거나, 그 체크카드를 이용한 범죄가 현실화될 수 없다는 이유로 ‘대가관계’나 ‘범죄이용 목적’이 없다고 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이현복 대법원 연구공보관은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범죄 피해금의 인출을 돕기 위해 인출 수수료를 약속받고 접근매체를 받아 보관하는 행위가 처벌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라며 “금융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범죄에 이용되는 것을 근절하고자 하는 전자금융거래법의 입법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해석기준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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