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신교 보수단체가 성관계는 혼인 안에서만 이뤄져야 하고 성별이 생식기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내용 등을 담은 조례안을 제정해줄 것을 서울시의회에 건의한 일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이 해당 조례안을 수용할 수 없고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서울시의회에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건강한 가정만들기 국민운동’(건가운)은 ‘서울특별시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하며 제정해줄 것을 건의했다. 이 조례안은 ‘혼인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연합을 의미한다’ ‘성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개인의 불변적인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하고, 이는 생식기와 성염색체에 의해서만 객관적으로 결정된다’는 내용 등을 ‘성 ·생명윤리’ 핵심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 조례안을 제출한 건가운의 조용식 사무총장은 “부부 관계 안에서의 성생활을 통해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실시하자는 차원에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건가운은 보수 개신교 목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단체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을 벌여왔다.
해당 조례안은 기존의 이분법적 성별로 분류할 수 없는 성별정체성을 가진 다양한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알아야 할 청소년에게 순결만을 강조하는 내용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손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조례안은 아동·청소년에게 섹슈얼리티 이해와 탐구를 통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이해하도록 하거나 자신의 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신, 성적 행위 금지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성적 권리를 매우 협소하게 규정하고,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가진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의회로부터 해당 조례안을 검토해줄 것을 요청받은 서울시교육청도 ‘수용 불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27일∼30일 학교 구성원 의견을 수렴한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조례안이 초·중등교육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상위법과 배치된다고 판단했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학교 등 교육시설이나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훈련에서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초·중등교육법은 학교 설립자와 학교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 인권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고,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당사국으로 하여금 아동 또는 그의 부모, 후견인이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등 어떠한 종류의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검토 의견을 1일 오후 2시15분께 서울시의회에 회신했다.
의견 수렴 기간에 서울시교육청에 제출된 의견은 총 20여건이다. 해당 조례안을 찬성하는 의견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현장에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고, 반인권적인 항목들이 포함돼 있어 조례안이 철회돼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제출한 의견과 자체 검토 결과 등을 토대로, 해당 단체로부터 조례안을 접수한 날로부터 14일 안에 처리 결과를 해당 단체에 통지할 예정이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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