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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극우단체 곁에서 견딘 고통의 100일…이태원 떠나야만 했던 유족들

등록 2023-02-05 17:05수정 2023-02-06 10:11

서울광장 분향소 지키는 유가족·시민
“철거 걱정에 납골당도 못 가고…”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4일 경찰이 광화문광장에 차벽을 설치해 분향소 설치를 원천 차단하자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앞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을 설치한 유가족들이 영정 사진을 만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4일 경찰이 광화문광장에 차벽을 설치해 분향소 설치를 원천 차단하자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앞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을 설치한 유가족들이 영정 사진을 만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동규에겐 미안하지만 오늘은 납골당에 찾아가지 못했어요.”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고 김동규군의 어머니 안영선(47)씨는 매주 일요일마다 아들의 납골당을 찾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전날 서울광장 앞에 마련한 분향소를 서울시와 경찰이 언제 철거할지 몰라서다. 안씨는 “아들의 영정이 놓인 합동분향소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야만 자리를 비울 수 있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맞은 이날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전날 충돌 끝에 설치한 합동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전날 서울광장 앞에 분향소를 새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경찰·서울시청 공무원들과 충돌했다. 경찰은 광화문광장에 차벽을 설치하고 기동대 경력 3천명가량을 투입해 분향소 설치를 원천 차단하고 나섰다. 하지만 영정을 든 유가족과 종교인들이 “핼러윈 데이에 인파가 몰렸을 땐 뭐했냐” 등 구호를 외치며 경찰 기동대 일부를 밀어내며 분향소를 설치할 공간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잠시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결국 유가족들은 한시간 넘게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겨우 159명의 영정 사진을 올릴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불특정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해야 하는 광장에 고정 시설물을 허가 없이 설치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6일 오후 1시까지 분향소를 철거해달라”는 내용의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전달하며 완강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이어 이날 입장문을 내어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행정기관 입장에서 기습 시설물 설치를 어떻게 방치할 수 있겠나. 행정집행 계획은 변함 없다”며 분향소 철거를 거듭 요청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 앞에 새롭게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참사 100일을 맞은 5일 오후, 분향소 너머 서울도서관 현판에 ‘겨울이 온 세상에 말했다. 홀로 추운 삶은 없다고’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고병찬 기자
지난 4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 앞에 새롭게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참사 100일을 맞은 5일 오후, 분향소 너머 서울도서관 현판에 ‘겨울이 온 세상에 말했다. 홀로 추운 삶은 없다고’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고병찬 기자

유가족들은 서울시의 이런 태도에 눈물과 분노 속에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추모제에 참석한 고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유가족은 시청광장 앞에서 이태원참사 100일 추모제를 진행했습니다. 어제 가까스로 허름한 분향소를 차렸습니다. 서울광장 분향소를 철거하려 하면 휘발유를 준비해 놓고 아이들을 따라갈 것입니다”라며 울부짖었다. 고 이해린씨의 동생 이해주(24)씨는 “100일이 지났는데도,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이제 서울시가 분향소를 철거할까봐 걱정하게 됐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은 한겨울 찬바람을 버티며 24시간 교대로 분향소를 지키기로 했다.

유가족들은 기존 서울 용산구에 있던 녹사평역 분향소가 시민 접근성이 떨어지고, 신자유연대의 2차 가해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이곳으로 분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고 송채림씨의 외삼촌 남윤호(46)씨는 “녹사평역 분향소는 외지고 좁아 많은 시민이 찾기 어려웠고, 게다가 신자유연대가 지속해서 2차 가해를 가하는 탓에 유가족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말했다.

새롭게 마련된 분향소엔 이날 오후까지 많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2015년 오토바이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는 노아무개(64)씨는 “녹사평역 시민분향소에도 가봤지만, 아무래도 장소가 외지고 공간도 협소해 이곳에서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유가족을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지기 마련인데, 서울시나 정부가 계속 고통을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한편,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대성당에서 열리는 참사 100일 미사에 참석해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인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인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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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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