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우가 27일 오후 대구 남구의 한 아동복지시설 복도에 서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7개월 은우(가명)의 하루는 ‘소금 약’ 먹기로 시작한다. 은우는 하루 여섯번 4∼5시간 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염화나트륨을 이유식과 함께 복용해야 한다. 은우는 태어나자마자 매독, 심방중격에 난 구멍으로 폐순환 이상을 겪는 심방중격결손, 뇌출혈로 인한 뇌 수두증을 앓았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의 품이 아닌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야만 했던 은우는 지속적인 탈수 증상과 호흡 부전, 구토, 경련으로 여러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은우는 몸에서 꾸준히 나트륨과 수분이 빠져나가는 ‘거짓저알도스테론증’과 성장발달지연 희귀질환인 ‘램 쉐퍼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램 쉐퍼 증후군은 전 세계에서 25명, 국내에서는 1명이 겪고 있는 희귀질환이다. 이후 지적장애인 엄마에게 버려진 은우는 입양 전 맡겨졌던 위탁가정에서도 병원비·양육 부담 등을 이유로 머물지 못했다. 입양이 좌절된 은우는 지난해 4월부터 대구의 한 양육시설에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은우가 지내는 양육시설에는 아동·청소년 68명이 살고 있다. 희귀질환을 앓는 은우를 시설에서 보살피기로 한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한겨레>와 만난 은우의 사회복지사 ‘엄마’인 김아무개(44)씨는 “우리가 이 아이를 잘 보살필 수 있을지 우려도 됐지만, 그래도 선생님들이 회의를 거쳐서 ‘한번 키워보자’ 해서 은우를 만나게 됐다. 은우가 지금 당장 머물 곳이 필요하고, 또 은우를 보살펴야 하는 게 우리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은우가 겪는 질환 특성상 몸에서 수분과 나트륨은 빠지고, 칼륨이 쌓이기 때문에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저칼륨 이유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 선정을 가장 고심한다. 바나나와 시금치 같은 칼륨 고함량 재료는 피하고, 소고기·브로콜리·양배추 등 저칼륨 재료로 은우의 이유식 따로 만든다. 사회복지사들이 사용하는 주방 한쪽 벽면에는 칼륨 저함량 재료들을 표시해 놓은 안내판이 붙어 있다. 한창 여러 음식 맛을 느끼고, 다양하게 먹어야 할 17개월 아이가 식단 관리를 해야만 하는 탓에 사회복지사들은 안타깝기만 하다. 김씨는 “다른 아이들이 바나나를 먹고 있을 때 그걸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은우를 보면 마음이 참 아프다. 못 먹는 재료들이 많으니 체중이 쉽게 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환절기에 아이들이 흔히 걸릴 수 있는 감기도 심장이 약한 은우에겐 치명적이다. 김씨는 “날이 조금이라도 추워지면 은우 숨소리가 달라진다. 약한 감기여도 곧바로 폐렴으로 진행될 수 있고, 항상 은우가 감기 걸리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은우가 감기 걸리는 순간이 매번 가장 큰 고비다”라고 말했다.
은우는 일주일에 두번 인근 대학병원에서 집중 재활치료를 받는다. 입원 검사도 매해 받아야 한다. 은우의 근력은 전반적으로 약해 또래보다 발달이 2∼3개월 정도 늦다. 시간이 지날수록 또래 아이들과의 발달 격차가 심해질 수 있기에 꾸준한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은우는 뇌에 물이 찬 상태로 태어나 이후 뇌병변장애를 진단받을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은우의 건강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선 추가적인 유전자 검사도 필요하지만, 현재 은우 엄마와 연락이 끊겨 진행이 힘든 상황이다. 시설 간호사인 유아무개(45)씨는 “매번 은우가 작은 몸으로 힘들게 물리치료 받는 모습을 지켜보면 마음이 참 안 좋고, 또 한편으론 잘 버텨주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처음에는 젖병 무는 힘도 없어서 분유 한 통 먹는 데만 2시간이 걸렸는데, 이젠 걸음마도 조금씩 균형 잡히고 혼자 앉아 있을 정도로 근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은우가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의 한 아동복지시설에서 물리치료 등을 받으러 병원에 가기 전 이유식을 먹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기검진 치료와 추적검사 비용으로 은우의 치료비는 수백만원에 달한다. 유씨는 “은우 병원비로만 한달에 60만원 정도 들고, 매해 1박 2일 입원 검사를 받게 되면 150만원 정도 든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시설 운영비로는 67명의 다른 아이들과 은우의 병원비를 모두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원금이 끊기면 사실상 은우의 지속적인 치료와 검사가 힘들어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은우 말고도 시설에 머문 아동들 대부분이 심리·특수치료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 시설에서 은우의 치료비만을 부담하기에는 어려운 현실이다.
조금씩 건강이 나아지는 은우의 모습을 보면, 사회복지사들은 기쁨과 안타까움을 모두 느낀다. 김씨는 “처음 은우가 시설에 왔을 땐 먹는 것조차 힘들어 많이 울었다. 더디지만 은우가 하루하루 조금씩 커가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며 “이렇게 지속적인 치료로 은우 건강이 나아지는 걸 보고 있으면 최대한 시설 형편이 닿는 데까지 받게 해주고 싶은데, 그걸 장담할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고 했다.
이날 오후 은우는 물리치료와 전기자극치료를 받기 위해 사회복지사 선생님 품에 안겨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다. 또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걸음마조차 힘겨워 은우는 곧잘 넘어지곤 한다. 은우가 치료를 처음 받기 시작했을 땐 근육 힘이 약해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없어 온종일 사회복지사 선생님 품에 안겨 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앞으로 자주 넘어지는 탓에 은우 얼굴에는 상처가 항상 남아 있다.
김씨는 “다른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면서 넘어지는 걸 볼 때와 은우가 넘어지는 걸 볼 때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은우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저 작은 몸이 얼마나 힘들까’ 싶어 더 아프고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9개월 동안 시설에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보살핌과 집중 치료를 받은 은우는 이제 조금씩 스스로 앉고 걷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람들과 눈 맞추며 잘 웃는 은우는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에게도 예쁨을 듬뿍 받는다고 한다.
은우의 물리치료사 ㄱ씨는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하니 은우가 처음엔 치료받을 때 짜증도 많이 냈다”며 “전에는 배에 힘도 부족하고, 굽히는 자세를 할 줄 몰라 뒤로 많이 넘어졌는데, 지금은 은우가 치료 경험을 잘 받아들여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두 시간 정도 치료를 받고 난 은우는 시설로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고 한다. 쓰러져 잠든 은우를 볼 때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은우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매번 은우가 견뎌야 할 각종 치료과 검사 걱정에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고 했다.
은우가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영남대학교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은우의 ‘엄마들’ “자기 몫하는 아이로 크기를”
시설에서 가장 어린 막내 은우는 사회복지사 ‘엄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귀염둥이다. 시설에 온 첫날에도 은우의 피부와 근육에는 탄력조차 없었고 무척 왜소했지만, 은우의 표정은 한없이 밝기만 했다고 한다.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인 희귀질환에 세계에서 25번째로 질환을 갖게 된 아이라 해서 질환과 관련된 정보가 별로 없던 시설 선생님들이 굉장히 불안해하고 긴장했었다. 그런데 처음 은우와 딱 눈을 마주치는데 너무나 밝게 잘 웃어줬다. 은우의 장점은 사람들과 눈 맞춤을 정말 잘하는 것”이라며 “은우에게 너무 고맙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은우의 ‘지금’이 어쩌면 가장 건강한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우와 눈을 맞추던 김씨는 눈물을 흘렸다. 뇌병변장애 진단을 앞둔 은우가 성장하면서 또래와의 발달 격차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씨를 포함한 은우의 사회복지사 ‘엄마’ 4명이 은우에게 바라는 건 지금처럼 밝은 모습으로 수많은 치료와 검사를 버텨주는 것이다. 김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은우가 치료를 계속 받아 성장하면서 단계적으로 받아야 할 치료와 검사들을 잘 받았으면 좋겠다. 은우가 지금 집중적으로 치료받아야 할 시기를 놓쳐버리면 병원에선 나중에 더 힘들어질 거라고 하더라. 이 시기에 치료를 제대로 받아 나중에 조금이라도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는 그런 아이로 밝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은우가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 남구의 한 아동복지시설에서 물리치료 등을 받으러 병원에 가려고 옷을 갈아입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은우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아래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기업은행 035-100411-01-456,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1588-1940)으로 문의 부탁 드립니다. 모금 참여 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 연락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 받으실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1000만원으로, 특수치료와 치료 부대경비를 포함한 통합 치료비 및 보육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은우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10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초과되는 금액은 은우 보호자의 뜻에 따라 다른 위기가정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월드비전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픈 엄마를 정성껏 돌보며, 웹툰작가의 꿈을 키워오던 지형이(가명)의 사연(<한겨레> 12월 12일치 14면)이 소개된 뒤 총 1057만2000원(2월2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월드비전은 “지형이가 꿈을 잃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신 일시계좌 후원자 196분, 네이버 해피빈 후원자 422분께 감사드린다”며 “소중한 마음은 지형이 가정에 잘 전달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후원금은 지형이의 미술학원비, 미술용품 구입비, 생계비 등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지형이가 ‘희망’이라는 그림을 새롭게 그릴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