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의 신형 화생방 보호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새 제품을 평가했는데 군이 보유한 세탁기에 남아있던 섬유유연제 때문에 새 제품이 평가 기준에 미달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경우, 해당 업체의 입찰을 제한한 것은 과도한 처분으로 취소돼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김정중)는 한 화학약품 업체가 방위사업청장을 상대로 낸 입찰 참가자 제한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화학약품 업체인 ㄱ사는 2014년 10월 방위사업청과 신형 화생방 보호의를 연구·개발해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육군 시험평가단은 2017년 4월 ㄱ사가 개발한 새로운 제품의 평가 과정에서 제품이 ‘저장수명’ 시험항목에서 ‘기준미달’ 했다고 통보했다. 방위사업청은 ㄱ사로부터 원인 분석과 기술보완 계획 등을 제출받고 재시험 절차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2019년 12월 “결함 발생 및 성능 미충족”을 이유로 개발사업의 중단 결정을 통보했고, 이듬해 1월 이 사건 공급계약의 해제를 통보했다.
이에 ㄱ사 쪽은 기준미달의 원인은 육군 쪽에 있다고 주장하며 계약 해제 통보에 반발해 소송을 냈다. ㄱ사는 ‘기준미달’이라는 결과가 나온 이유는 “군이 보유한 세탁기의 크기와 이 세탁기에 잔류된 섬유유연제 때문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적극적인 기술 보완을 통해 보호 성능을 개선하고, 자체적인 시험 결과 방호 성능을 충족하는 결과를 얻었다”며 “계약 이행을 위해 최선을 다해 제재의 필요성이 없는데도 지나치게 과도한 처분을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ㄱ사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봤다. ㄱ사가 이 사건 계약의 해제 조건인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염려가 있는 자로서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이행하지 아니한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관련 연구 결과들을 통해 “섬유유연제를 결함의 원인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도 봤다. 재판부는 “ㄱ사가 섬유유연제 사용, 세탁기의 크기 차이 등 결함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했고, 그에 따라 새 제품 개선 작업을 계속 시행했던 점, 방위사업청이 바꾼 시험평가 방법과 관련해 평가 기준이 되는 미국의 비교시제를 확보하지 못해서 이에 따라 새 제품 개발사업 진행에도 차질이 생겼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계약 해제 조처는 과도한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