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창신동 ‘이음피움봉제역사관’에는 재봉틀 같은 봉제물품은 물론이고 봉제산업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들을 모아놨다.
“동대문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옷 판매가 이뤄지면서 이곳 창신동에 봉제공장들이 속속 모여들게 돼요. 2018년에 약 1500개의 공장이 있었고요. 지금은 인건비가 싼 외국에서 옷을 만들어오고, 젊은 사람들도 봉제 일을 기피하면서 공장 수가 많이 줄었어요.”
서울 종로구 창신동 647 봉제 골목. 이곳에 창신동의 봉제 역사를 간직한 ‘이음피움봉제역사관’이 있다. 지난 9일 관람객을 맞이한 도슨트가 창신동 봉제 거리가 만들어진 산업화 배경부터 전태일 열사에 대한 이야기, 봉제에 필요한 각종 도구의 변천사를 맛깔나게 들려줬다. 아이들은 오래된 재봉틀·다리미 등을 신기해했고, 어른들은 잊고 있던 이야기에 고개를 연신 주억였다.
4층짜리 좁은 건물이지만 봉제 문화와 역사를 오밀조밀 담아내 사랑받던 이음피움봉제역사관이 이달 말 폐관한다.
“목표 대비 방문객 저조 등”(서울시)이 이유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때인 2018년 4월 개관 당시 ‘서울 도시재생사업 1호’ ‘국내 최초 봉제역사관’으로 불리며 관심을 받았으나 5년 만에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역사관을 담당하는 서울시 경제정책실 관계자는 “개관 당시 기대 방문객이 연간 10만명이었는데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진 위치 탓인지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내려졌던 것 같다”고 전했다. 개관 1년 만에 2만여 명이 방문하며 지역 명소가 됐지만, 현재 한 달 평균 방문객은 150명가량이다.
이음피움봉제역사관 엘리베이터에는 셔츠에 새긴 층별 안내도가 걸려있다.
봉제인들의 가위는 요리사의 칼과 같다. 봉제마스터들의 손때 묻은 가위들도 한쪽 벽에 전시돼있다.
역사관은 서울시가 예산을 100% 지원한다. 전시판매업체 베리준오와 한국가치패션연구소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공동운영 해왔으며, 오는 5월9일로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역사관도 폐관 수순을 밟게 됐다. 역사관을 채운 재봉틀, 가위 등 봉제물품들은 대여인들에게 모두 돌아가게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 해 예산이 약 6~8억 정도 드는데 지난해 7월 구조조정, 개선사업으로 지목돼 민간 위탁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폐관 뒤 건물은 ‘솔루션 앵커’라고 해서 봉제 소상공인들을 위한 지원센터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음피움역사박물관 지하 1층 바느질카페에서는 캐릭터 브로치 만들기 같은 바느질 체험이 가능하다.
폐관 소식은 1월 말 역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 역사관의 한 직원은 “민간 위탁 경영 종료 6개월 전에는 새 사업자 모집 공고가 나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없어 폐관을 짐작하곤 있었다”고 했다. 역사관 기본구상에 참여하고 현재도 역사관 운영위원인 손경주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상임이사도 “폐관 소식을 주변을 통해 들었지 서울시나 운영위 회의를 통해 알게 되진 않았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폐관 소식에 창신동 일대 지역 주민들은 폐관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지역 맘카페를 중심으로 서명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이들은 “창신동 봉제 거리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곳인데 멀쩡한 역사관을 왜 닫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손 이사도 “서울시가 코로나19 시기에 방문객을 시간당 5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는데 방문객이 적어 폐관한다는 사유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음피움봉제역사관 전봇대는 바늘 모양으로 만들어 전선이 마치 실처럼 보이게 꾸몄다.
봉제 관련 전시는 물론이고, 싸개단추·캐릭터 브로치 만들기 등의 바느질 체험도 무료로 할 수 있는 역사관은 방문객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재봉틀 모양으로 지어진 건물, 바늘 모양으로 꾸민 전봇대, 실 같은 전선들, 역사관 근방 골무 모양 놀이터(산마루놀이터)까지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어 아이들에게도 인기다.
폐관 반대 서명운동으로 오히려 역사관이 알려지면서 하루 입장객이 최대 100명 가까이 늘기도 했다. 이날 초등학생 딸과 방문한 한 관람객은 “역사관을 알고는 있었는데 선뜻 오지 못하다 폐관 소식에 부랴부랴 오게 됐다”면서 “오토바이가 다니는 구불구불 언덕길과 골목길, 옛날 사진과 봉제물품들을 보며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셨던 조부모님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서명운동에도 동참했다는 또 다른 관람객은 “작은 도서관 지원도 끊겠다 하고 서울시가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홍보가 잘 됐다면 이용객이 많았을 텐데 역사관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비쳤다.
이음피움봉제역사관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창신동 봉제산업에 대한 기록물을 볼 수 있다.
반면 일반시민들과 달리 창신동 터줏대감인 봉제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동대문의류봉제협회 한 관계자는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역사관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반대 의견을 내는 상황이 아니고, 남은 시간도 얼마 없다 보니 폐관 결정을 뒤집긴 어려울 거란 반응도 나온다.
창신동 도시재생사업을 펼쳐 온 손 이사는 “봉제산업은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가 된 사업인데 남아있는 기록물이라도 서울시가 나서서 더 보존하고 ‘케이(K) 패션 박물관’으로 확장해 갈 생각을 못 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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