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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응우옌티탄, 마침내 진실 앞에 “탕 러이(이겼다)”를 외쳤다

등록 2023-02-14 04:30수정 2023-02-17 18:04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씨 인터뷰]
한국군에 가족들 잃고 총상, 피해사실 알리며 법적투쟁
“함께 진실 밝힌 이들 떠올려…나만의 승리로 끝나지 않길”
베트남 민간인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이 2월12일 한국 청년들이 건넨 축하 꽃다발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2월7일 서울중앙지법은 응우옌티탄이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에 대한 피해를 보상하라’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신다은 기자
베트남 민간인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이 2월12일 한국 청년들이 건넨 축하 꽃다발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2월7일 서울중앙지법은 응우옌티탄이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에 대한 피해를 보상하라’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신다은 기자

그날은 아침부터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졌지만 “마음이 도저히 여유롭지가 않았다”. 베트남 다낭에 사는 응우옌티탄(63)은 텃밭에 물을 주고, 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고, 집에 와서 요리를 준비했다. 낮 12시(현지시각)부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2월7일 그 시각, 한국에 있는 서울중앙지법에선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의 생존자 응우옌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선고 공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1968년 2월12일 당시 8살이던 그는 퐁니·퐁녓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로 인해 가족 5명을 잃고 자신도 총에 맞아 병원에 실려갔다.

휴대전화만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기를 1시간30분여. 조용하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탕 러이! 탕 러이!(이겼어! 이겼어!)”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이 소리쳤다. 응우옌티탄은 자신도 모르게 “탕 러이”라고 따라 외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축하전화가 걸려왔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대한민국이 응우옌티탄에게 3000만100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55년 만에 돌아온 한국 법원의 응답이었다.

“그간의 법정 투쟁이 진실로 인정받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2월12일 베트남 다낭의 자택에서 만난 응우옌티탄이 말했다. 법원 판결 이후 베트남 현지에서 이뤄진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이날 이곳을 찾은 한베평화재단 평화기행단 소속 한국 청년들은 그에게 축하 꽃다발을 건넸다.

응우옌티탄은 2015년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앞서 <한겨레21>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퐁니·퐁녓마을에서 일어났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를 앞장서 알린 장본인이었다. 2015년 이후 그는 4차례 한국을 오가며 시민평화법정와 기자회견 등에 참석해 학살 피해 사실을 계속 알렸다.

“처음엔 참전군인들이 당연히 내게 사과할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참전 군인들이 (학살 당시) 8살짜리가 뭘 아느냐며 내 말을 인정하지 않더군요. 내가 원하는 건 ‘미안하다’는 한마디인데 그걸 들을 수 없다는 게 참담했습니다.” 한국 방문 때마다 응우옌티탄의 마음 속에는 기대와 실망이 수없이 교차했다.

2018년 한국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민간 모의법정인 ‘시민평화법정’에선 승소 판결을 받고 뛸듯이 기뻤다. 그러나 실제 법정에서 이뤄진 재판이 아니었다. 2020년 4월,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한 뒤에는 코로나19로 한국 방문길이 막혀 마음을 졸였다. 막상 한국에서 이어진 변호사 면담, 기자회견, 법정 증언 등에 지칠 때도 있었다. “법정 증언을 마치니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럴 땐, 진실을 밝혀준 이들을 떠올렸다. 2019년 베트남전 참전 군인 한기중씨는 응우옌티탄 앞에 무릎 꿇고 사과했다. 퐁니·퐁녓마을 작전에 참가했던 참전 군인 류진성씨는 당시 국도변에 희생자 주검이 늘어져있는 모습을 봤다며 2022년 “당신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말해줬다. 응우옌티탄에게 “두 사람의 진심 어린 사과는 감동적이었고,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위로가 됐다”. 그리고 2015년 한국에 갔을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는 응우옌티탄을 꼭 안아주면서 “전쟁의 고통을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의 포옹을 응우옌티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응우옌티탄은 자신을 도왔던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저는 이 사건이 저 혼자만의 승소가 아님을 잘 압니다. 저와 동행했던 모든 사람들과 한국 시민사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가운데)과 학살 목격자 응우옌득쩌이(회색 셔츠 입은 이)가 2월12일 베트남 자신의 집에서 승소 축하 꽃다발을 건네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베트남 민간인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가운데)과 학살 목격자 응우옌득쩌이(회색 셔츠 입은 이)가 2월12일 베트남 자신의 집에서 승소 축하 꽃다발을 건네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한국 법원이 대한민국 정부에 배상하라고 판결한 돈은 3000만100원이다.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은 “국가배상소송의 최소 신청 금액이 3000만원이라서 거기서 100원만 더한 것”이라며 “피해자가 바라는 건 (돈이 아닌) 한국 정부의 인정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응우옌티탄 역시 “나는 (손해배상으로 받게 될) 돈에는 관심이 없다”며 “한국 정부의 인정과 사과를 받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베트남 정부와의 만남 때 한국 대통령들은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부채감을 에둘러 표현하곤 했다. ”우리 국민이 (베트남에) 마음의 빚이 있다.”(2004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2018년 3월 문재인 전 대통령) 이에 대해 응우옌씨는 “한국 대통령의 사과를 들었을 땐 ‘한국군이 잘못한 것을 알더라도 개별 사건은 자세히 모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을 들으며 ‘판사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주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응우옌티탄은 혼자만의 기쁨으로 이번 판결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한베평화재단이 추산하는 한국군 민간이 학살 피해자는 1만여명에 이른다. “퐁니·퐁녓마을 말고도 하미, 꽝응아이성 등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많은데 여전히 진실규명이 안 됐습니다. 한국 정부가 하루빨리 이 사건들을 조사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으로 희생자들이 위로를 받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다낭(베트남)/글·사진 신다은 <한겨레21>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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