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납치 피해자 김주삼씨. 사진 진실화해위 제공
황해도 태생으로 북한 지역에서 거주하다 북파공작원에 납치당해 남한에서 67년을 살아온 김주삼(86)씨에게 국가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 1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재판장 박석근)는 김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김씨는 15억원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이 가운데 10억원을 위자료로 인정한 것이다.
김씨는 6·25전쟁 직후인 1956년 10월 북파공작원 3명에 의해 황해도 용연군 자택에서 납치됐다. 당시 19살이었던 그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있던 공군 첩보대로 끌려와 황해도 지역 인민군 부대의 위치와 교량 등 지형 정보에 대해 신문을 당했고, 이후 4년간 공군기지에서 보수도 받지 못한 채 심부름 등 노역을 하다가 1961년 풀려났다. 김씨는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 땅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한국 국민으로 편입됐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일용직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 나갔다. 2013년 국방부 특수임무 수행자 보상지원단(지원단)은 조사를 통해 1956년 김씨가 북한에서 납치돼 남한 군 기지에 억류됐음을 시인했다. 이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8월 김씨가 공군 첩보대에 의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밝히면서, 정부가 김씨에게 사과하고 북한의 가족과 상봉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권고했다.
재판부는 “국가인 피고가 저지른 불법행위가 중대하고도 명백하다. 김씨는 가족과 생이별하게 됐고 이로써 극심한 외로움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와 같은 고통은 평생 치유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진실화해위가 희생자로 확인하는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면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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