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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신당역 살인’ 5개월 만에…정부,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 발의

등록 2023-02-20 17:46수정 2023-02-21 01:26

지난해 9월14일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신당역에서 지난해 9월18일 오전 화장실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의 공간이 추모의 메시지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사진은 여성화장실 표시와 메시지를 다중노출기법으로 찍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해 9월14일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신당역에서 지난해 9월18일 오전 화장실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의 공간이 추모의 메시지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사진은 여성화장실 표시와 메시지를 다중노출기법으로 찍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온 ‘스토킹 처벌법’(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보완한 정부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5개월만이다. 개정안엔 스토킹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법원에 직접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으나, 법원행정처는 반대 취지의 의견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0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어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법사위에 제출된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은 정부안(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과 의원안(국회의원 대표 발의안)을 합해 총 33개다. 법무부가 낸 개정안은 반의사불벌죄 조항 폐지, ‘온라인 스토킹’ 처벌 규정 신설, 스토킹 가해자 위치추적 도입, 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를 취소·변경할 경우 피해자에게 통지하는 규정 신설,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 도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나머지 의원안 32개 상당수도 정부안과 비슷하다.

이 중 피해자 보호명령제 도입 규정을 신설한 법안은 정부안을 포함해 총 9개다. <한겨레>가 확인한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심사자료를 보면, 이 법안들을 심사한 법사위 전문위원은 “(검사가 청구하는) 잠정조치와 달리 (피해자 보호명령은)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고, 기간도 최장 2∼3년으로 잠정조치(최장 6개월)보다 길게 설정돼 있다”며 “피해자 보호가 강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스토킹 처벌법상의 잠정조치란 스토킹 범죄의 원활한 조사나 피해자 보호를 위해 법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내리는 결정으로, 가해자에게 △서면 경고 △100m 이내 접근금지 △연락 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검사의 청구가 필요하다. 개정안의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도 이와 유사하지만,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피해자 보호명령 조항은 가정폭력 처벌법(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도 도입돼 있는데, 법원은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 검사의 청구에 따라 가정폭력 행위자(가해자)에게 △주거 퇴거 △100m 이내 접근금지 △연락 금지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다.

‘스토킹 처벌법’에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했다.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는 (범죄) 행위자의 처벌을 불문하고 가족관계 등 생활 영역을 공유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안에서 실시하는 것이고,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관계 회복에 중점을 두고 도입된 것”이라며 “(법원의) 피해자 보호명령 결정을 위해서는 피해자와 스토킹 행위자(가해자) 조사·심리 절차가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스토킹 범죄 대처가 오히려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 법원행정처의 주장이다.

그러나 여성계는 피해자 보호명령제가 스토킹 처벌법에도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피해자 보호명령제는 말 그대로 피해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회복’에 중점을 뒀다는 법원행정처 말대로라면, 이는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발생하는 현장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피해자 보호명령제 도입 취지와 어긋나는 것”이라며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보호조치를 하지 않을 때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 법적 자원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법사위에서 심사한 법안 중에는 스토킹 피해자가 가해자한테 전화가 온 사실을 인지하기만 해도 스토킹 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이탄희 더불어민주당·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안)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일부 법원에서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전화를 걸었더라도, 피해자가 그 전화를 받지 않으면 스토킹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일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이탄희 의원안 등은 스토킹 행위자(가해자)가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물건 또는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등을 보내고, 피해자가 그 송신 사실을 인식하기만 해도 스토킹으로 간주하도록 했다. 법무부는 이 법안에 대해 ‘입법정책적 결정 사항’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법원행정처는 처벌 범위가 광범위해질 수 있다며 전화의 경우로 범위를 한정하여 규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이탄희 의원은 스토킹 가해자가 전화뿐만 아니라 에스엔에스(SNS)를 활용해 피해자에게 메시지 요청을 하거나 친구 신청을 하고, 또 피해자 계정을 찾아내 ‘좋아요’를 누르는 등 게시물을 확인한 이력을 남겨 피해자를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어 개정안 원안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소위에서 논의된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은 모두 법사위 전체회의 상정이 보류됐다.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위원들은 다음 소위 회의에서 스토킹 처벌법 개정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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