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아(26)씨가 백제 시대 의복을 입고 익산 미륵사지에서 찍은 사진(왼쪽)과 조선시대 관복 ‘철릭’을 변형한 원피스를 입고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 이씨 제공
이선아(26)씨는 요즘 한복을 입고 박물관과 유적지에 가는 놀이에 빠져있다. 조선 시대 관복의 하나인 ‘철릭’을 변형한 원피스를 입고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전시를 관람하거나, 백제 시대 의복을 입고 익산 미륵사지를 놀러 가는 식이다. 어렸을 때부터 <대장금>이나 <장희빈> 등 사극을 좋아했던 이씨는 몇 년 전부터 한복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입을 수 있는 한복을 종종 만들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한복을 변형한 의류나 노리개 등 장신구를 파는 곳이 많아져 부담 없이 한복을 사고 입을 수 있다고 한다. 이씨는 “요즘 전통공예를 모티브로 한 물품을 세련되게 파는 곳들도 많아지고 온라인에서도 한복과 전통문화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낀다”며 “이전에는 튈까 봐 두려웠는데, 최근에는 같이 한복을 입고 여행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몇년새 20~30세대 사이에서 한복을 입거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잡화를 사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한복이나 전통공예 소품 등 선택의 폭이 다양해진 것이 영향을 끼쳤다. 한복을 입고 궁궐 나들이를 가는 유행이 대중화되자, 한복을 입고 박물관이나 유적지 등에 방문하거나 전통무예인 국궁을 배우는 등 ‘전통문화 놀이’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김하영(34)씨가 생활한복을 입고 덕수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김씨가 그린 도명존자 탱화. 김씨 제공
한복과 전통공예 소품이 가장 활발하게 판매되는 곳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다. 대부분 영세 제작자라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다 보니, 일정 금액의 투자가 이뤄지면 제품화돼 판매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은 지난해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전통기획전’을 열었는데, 프로젝트 169건이 열려 23억6000만원의 후원액(매출)을 달성했다. 저고리를 모티브로 한 재킷, 마고자를 재해석한 방한 외투 등 개성 있는 의류부터 목조건물의 단청에서 영감을 얻은 우산 등이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8월 5회차를 맞은 박람회 ‘한복상점’에는 역대 최다인 74개 업체가 참여했다.
젊은 세대들이 옛것에 열광하는 데에는 접근성이 좋아진 것도 한몫한다. 최근 한복을 변형한 치마를 샀다는 유은지(25)씨는 “‘전통’하면 딱딱하고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는데 요즘에는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나온 굿즈 등 전통적인 것들이 오히려 ‘힙한’ 느낌”이라며 “기성품이지만 고급스러운 느낌도 들고 상품의 폭도 넓어 고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혜원 텀블벅 매니저는 “오프라인 매장 중심으로 운영되던 한복 브랜드들이 코로나19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며 20~30세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며 “오는 3월에도 전통기획전을 열 예정이며 현재까지 62명의 창작자가 참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한복으로 전통문화에 빠지기 시작해 더 특별한 전통문화 놀이를 찾게 된 이도 있다. 직장인 김하영(34)씨는 생활한복을 입기 시작하며 전통문화에 관심이 생겨 국궁(활쏘기)과 탱화(불교신앙을 내용으로 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활을 쏘고 붓을 잡고 선을 긋는 것 모두 집중력 향상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며 “K-문화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요즘, 옛것들이 다시 현대에 맞게 재구성되며 보존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