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근 할머니가 대구 중구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을 떠나며 손인사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내는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니더.”
경북지역 유일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박필근 할머니(95)는 생의 끝자락에 서 있다. 16살에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공장에서 일하다 위안소 생활까지 한 기억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를 괴롭힌다.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 와 두들겨 맞았던 다리의 상처는 지금도 선명하다.
2차례의 목숨을 건 탈출 시도 끝에 재일교포 부부의 도움으로 1945년 2월경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박 할머니는 귀국 후 결혼을 했지만 남편과 일찍이 사별했다. 7명의 자식을 얻었지만 5명 아이들을 먼저 보내야 했다. 남은 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박필근 할머니는 손마디의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일을 했다.
박필근 할머니가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자택에서 할머니를 찾아온 이들을 위해 차를 준비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박필근 할머니는 혼자 있는 시간 화투를 치며 소일한다.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의 박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이들은 꼭 한판씩 화투를 치고 나와야 한다. 할머니의 소박한 애정표현이다. 포항/백소아 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굽고 말라 있는 박필근 할머니의 손. 박종식 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에 힘을 얻어 1993년 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하게 됐다. 자식들의 지지도 할머니가 용기를 내게 한 계기가 됐다. 피해자 등록 후 할머니를 응원하는 이들이 할머니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있다. 포항여성회와 대구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수시로 할머니를 찾아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10명이다. 생존자 10명의 평균 연령은 93.6세이다. 일본과의 관계 회복에 적극적인 윤석열 정부 들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박필근 할머니의 며느리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수차례 다녀갔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찾아오는 이들이 없다”고 말한다.
박필근 할머니가 대구 중구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에서 서혁수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박필근 할머니가 대구 중구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에 걸려있는 대구·경북 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박필근 할머니가 대구 중구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에 걸려있는 대구·경북 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이 지역의 할머니들은 고령으로 대부분 세상을 떠나 현재는 대구에 이용수 할머니, 경북에 박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일본놈 사과도 받고 싶고 배상도 받고 싶은” 할머니의 소원은 살아생전에 이뤄질 수 있을까.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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