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모승유(가명·50)씨의,
갓 스무살이 된 아들 상윤(가명)씨가 유서를 써놓고 집을 나갔다. 재수하던 상윤씨는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다 휴대전화만 개통하면 현금을 준다는 인터넷 광고에 마음이 흔들렸다. ‘휴대전화 대리점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상윤씨에게 “휴대전화를 개통해 기계만 넘기면 한대당 60만원을 주겠다.
매달 요금과 기계값 할부만 부담하면 된다”고 꼬드겼다. 이른바 ‘내구제대출’(나를 구제하는 대출)이었다. 내구제대출이란 신용등급이 낮지만 돈이 급하게 필요한 사람이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나 유심(USIM)을 넘기고 일정 금액을 받는 불법 사금융이다.
상윤씨는 2021년 5월 대리점에서 첫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나중에는 비대면 개통해 몇대의 휴대전화를 샀는지, 몇개의 유심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대리점 사장은 상윤씨의 신분증을 가져갔고, 상윤씨는 시키는 대로 휴대전화 본인 인증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통장에 200만원이 들어왔다. 숨통이 트인 것은 잠시, 170만원, 180만원이 찍힌 휴대전화비 고지서가 날아왔다. 휴대전화마다 소액결제가 돼 있었다. 미납요금을 제때 내지 못하자 휴대전화 기계값이 한꺼번에 청구됐다. 빚은 금세 2400만원으로 불어났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상윤씨는 바다로 향했다.
모씨가 대리점 사장과 통화해보니, 상윤씨 이름으로 개통된 휴대전화 회선은 총 12개였다. 인터넷 설치도 2건 있었다. 상윤씨는 “기계만 넘기면 현금을 준다고 했지 소액결제를 하겠다는 설명을 못 들었다”고 했지만 사장은 “기계값이 부족해 (본인이) 소액결제를 했다. 정보이용료가 청구된다고 분명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휴대전화 기계값과 요금으로 상윤씨는 2400만원의 빚더미를 떠안았는데 대리점 사장은 ‘떳떳하니까 신고해도 된다’고 큰소리쳤다. 통신사 쪽은 “마지막에 (상윤씨) 본인이 인증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했다.
휴대전화 개통을 유인하는 자료. 경찰청 보도자료
‘안전하다’ ‘믿을 수 있다’고 인터넷에서 홍보하는 내구제대출이 청년들을 빚더미 속으로 떠밀어 넣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광주청지트)가 내구제대출 실태를 처음 파악한 ‘내구제대출 피해자 조사’ 보고서(2023년)를 보면, 신용도가 낮아 은행대출이 어려운 청년들이 급박한 상황에서 사채보다는 위험성이 낮다는 생각에 내구제대출을 선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내구제대출의 출발점은 인터넷 검색이다. 1500만원의 빚을 떠안은 ㄱ(30)씨는 “인터넷 검색하면 정부 지원보다 내구제대출이 더 많이 보인다”고 했다. ㄴ(38)씨도 “취업은 안 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집에다가는 말을 못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돈 고민하지 말고 상담을 받아보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광고가 떠 상담을 신청했다. ㄷ(26)씨는 “손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장의 피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다 분납이니까 한달에 얼마씩 차근차근 갚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극악무도한 대부업보단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구제대출은 비대면으로 주로 진행되는데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분증 등 개인정보를 먼저 요구한다. 망설이면 ‘불법이 아니다’라거나 ‘휴대전화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현혹했다. 아르바이트생이던 ㄹ(21)씨에게 내구제대출 브로커는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잔액이 없는 통장에서 요금을 빠져나가게 하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믿었던 ㄹ씨는 6개월 뒤 채권 추심을 받았는데 전화요금은 물론, 소액결제 한도를 설정해두지 않아 상품권과 게임아이템까지 1700만원이 무더기로 결제돼 있었다. 김서희 광주청지트 상담사는 “내구제대출을 하다가 이상해서 취소해달라고 했는데 ‘반품을 하기 위해 인증번호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속여서 휴대전화를 개통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몇백만원씩 소액결제로 청구하는 것은 물론 대포폰 등을 범죄조직에 넘겨버리는 경우도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1만5910건이었던 대포폰 적발 건수는 2022년 5만3104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고, 다수가 내구제대출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가족이 함께 2400만원의 빚을 갚고 있는 상윤씨는 범용 공인인증서가 전혀 모르는 아이피(IP) 주소로 발급돼 휴대전화 번호가 사기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경찰 조사를 받고 관련 자료도 넘겼지만 그 후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했다. 상윤씨의 주민등록증을 보관하던 대리점 사장이 의심되지만 그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주세연 광주청지트 상담사는 “만나지 않고 신분증이나 통장을 보내다 보니, 그게 범죄에 활용돼서 (돈을 빌린 사람이) 벌금을 받는 경우도 자주 봤다”고 했다.
박수민 광주청지트 이사장은 “경찰에 신고해도 큰 피해가 아니면 그냥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의 신상 명세를 명확히 알아야 접수가 가능하다고도 한다.
개인이 대응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구조라 브로커(업체)가 이 점을 악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명칭은 ‘대출’이지만 불법 대부업으로 볼 수는 없다.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라 금감원에서 조사할 수 없다.”(금융감독원)
“사실상 ‘대출’ 아니냐. 과기정통부는 휴대전화 번호 이용 정지 정도만 협업한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난해 8월 법무부·경찰청·금감원 등이 참여하는 ‘불법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태스크포스)가 만들어졌지만 ‘내구제대출’(나를 구제하는 대출)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금감원은 ‘이름뿐인 대출’이라며, 과기정통부는 ‘사실상 대출’이라며 발뺌하는 탓이다. 감독의 빈틈을 뚫고 피해 사례는 속출한다.
사회적협동조합인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광주청지트)가 지난해 11월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에서 대출 피해 상담 업무 등을 하는 관계자 9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최근 1년간 평균 6.8건의 내구제대출 피해 사례를 접했다고 했다.
1인당 피해 금액 평균은 409만7천원, 휴대폰 개설 수는 평균 3.3대였다.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800만원이었고 10대 이상 휴대전화가 개설된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는 20대가 대다수(70.7%)였다. 내구제대출과 함께 고금리 사채나 개인정보 유출, 명의 도용, 보이스피싱 등 다른 추가 피해가 발생하는 비율도 95%에 이른다. 그러나 피해자 3명 중 2명(65.9%)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55.6%)이라고 했다. 실제로 전기통신사업법은 다른 사람에게 휴대전화를 넘긴 행위를 처벌하게 돼 있다.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내구제대출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불법 사금융이다 보니 경찰에서 대포폰을 조사하다가 확인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피해) 접수가 있으면 수사당국에 보내 처리한다”며
“신변종 불법 사금융은 법이 못 쫓아가는 경우가 있지만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태스크포스에서 (내구제대출) 광고 사전차단 쪽으로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태스크포스에서 협업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내구제대출 근절을 위해 관계기관이 공조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실태 조사와 법 개정 등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내구제대출은 ‘금융을 가장하는 행위’기 때문에 피해신고가 들어오면 금융당국이 실태 파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민 광주청지트 이사장은 “대포통장 발급과 관련해 은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듯이 휴대전화 개통과 관련한 제재나 관리·감독 조치가 필요하다”며 “대부업으로 단속할 수 없다면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정부와 국회가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