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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미군 ‘위안부’ 아픈 역사 담긴 그곳, 철거로 지워지나

등록 2023-03-08 06:00수정 2023-03-08 15:50

지난해 국가책임 인정된 미군 ‘위안부’
성병 관리 명목으로 여성들 감금한 성병관리소
동두천시가 부지 매입하며 철거 우려 커져
“역사 알리기 위한 공간으로 보존돼야”
7일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있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 이우연 기자
7일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있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 이우연 기자

7일 오전 10시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서 등산객을 따라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 갈림길에 서니, 오른편 둔덕에 칡덩굴과 검은 망사 천으로 뒤덮인 시멘트 건물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이 건물을 흉가라고 했고, 누군가는 이 건물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건물은 정부가 1970년대부터 미군 기지촌 ‘위안부’를 강제로 격리해 수용했던 성병관리소다. 최근 동두천시가 이 건물을 매입하며 흔적도 없이 철거될 처지에 처했다. 지난해 대법원이 관리소를 운영한 국가 책임을 최종 인정한 가운데, 미군 ‘위안부’ 문제를 다뤄온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역사 지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동두천 소요산에 있는 구 성병관리소 건물은 전국에서 얼마 안 남은 원형 그대로 남은 성병관리소 건물이다. 미군 ‘위안부’들은 매주 2번씩 있던 성병 검진에서 낙검(성병보균자로 진단 받음)되거나, 정부에 등록하지 않고 미군을 상대하다가 적발되면 ‘낙검자 수용소’로 불리는 이곳에 끌려갔다.

수용된 ‘위안부’에게는 페니실린이 주사됐고, 완치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관리소를 나갈 수 없었다. 이들은 페니실린 쇼크로, 혹은 수용소를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다치고 숨졌다. ‘위안부’ 여성 140여명이 수용된 2층 건물 창에는 이들을 막았던 쇠창살이 여전히 있었다.
지난달 17일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있는 옛 성병관리소 2층이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최희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사무국장 제공
지난달 17일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있는 옛 성병관리소 2층이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최희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사무국장 제공

현재 경기도 평택·파주·의정부 등 옛 미군 기지촌에서 성병관리소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2020년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펴낸 ‘경기도 기지촌여성 생활 실태 및 지원정책연구’를 보면, 땅 소유주가 지자체든 개인이든 상관없이 보건소 등 다른 건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1996년 성병관리소 조례가 폐지되며 27년간 폐건물로 방치돼왔다. 그사이 방치된 건물 앞에 품바 공연을 하는 이들이 자리를 잡았고, 이를 계기로 건물에 외부인이 드나들 수 있게 됐다. 흉가 체험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버들이 드나들기도 한 건물은 오랜 세월 쓰레기더미와 낙서로 뒤덮였다.

이는 학교법인 신흥이 보유한 동두천 성병관리소 건물과 대지를 시가 넘겨받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린 탓이다. 2017년 당시 매입비 이견으로 결렬된 협의는 지난달 말 동두천시가 29억원에 해당 터와 건물을 사들이면서 소유권이 이전됐다. 동두천시는 이곳 일대와 소요산 주변을 개발하는 ‘소요산 확대개발사업 발전방안’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동두천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용역 기간은 올해 11월까지로, 보고회에서 시의원이나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등의 이야기를 들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있는 옛 성병관리소 1층이 낙서로 뒤덮여 있다 . 최희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사무국장 제공
지난달 17일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있는 옛 성병관리소 1층이 낙서로 뒤덮여 있다 . 최희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사무국장 제공

‘개발 사업’이 이뤄지면 아픈 역사 자체가 지워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시는 용역 연구 중이라 부지 용도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관리소 건물 근처에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과 연계해 유원지 놀이시설과 주차장, 산책로 등을 만드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는 지난 6일 동두천시장에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어야 할 국가와 지자체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는 공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공간으로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며 건물 철거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냈다.

십수년간 방치돼 누구나 들락거릴 수 있던 건물 뒤편 입구에는 현재 자물쇠가 걸려 출입이 어렵다. “어린 시절부터 동두천에서 살았는데 저 역시 이전까지는 ‘소요산에 무서운 건물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았어요. 누군가는 이 건물을 없애 동두천에 덧씌워진 기지촌과 윤락의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곳이 원형을 보존하는 형태로 개·보수돼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고,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는 장소로 거듭날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두천 지역에서 활동해온 최희신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사무국장이 성병관리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고쳐지지 않는 상처를 가슴 깊이 안고 살아온 우리와 같은 여성이 생겨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미군 ‘위안부’ 피해자 박영자씨는 지난 4일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디딤돌’상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의 바람에 동두천시는 어떤 대답을 할까.
동두천 성병관리소의 건물평면도. <동두천 지방행정사 : 이담의 발자취>
동두천 성병관리소의 건물평면도. <동두천 지방행정사 : 이담의 발자취>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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