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병원에서 뒤바뀐 사실을 모른 채 40여년을 살아온 가족에게 산부인과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3단독 김진희 판사는 ㄱ씨 부부와 딸 ㄴ씨가 산부인과 병원장이었던 ㄷ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ㄷ씨가 ㄱ씨 부부와 ㄴ씨에게 5000만원씩 총 1억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지난달 22일 판결했다.
해당 소송은 지난해 4월 ㄱ씨 부부가 딸이 자신들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시작됐다. 갈등을 겪던 부부는 같은 해 5월 유전자 검사를 통해 ㄴ씨가 친자가 아니라는 결과를 받았다. 부부는 지난 1980년 3월 당시 ㄷ씨가 운영하던 경기 수원시 한 산부인과 간호사로부터 딸 ㄴ씨를 넘겨받은 뒤, 40년 넘게 ㄴ씨를 친자로 알고 양육·부양해왔다.
부부는 ㄴ씨 출생 당시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보고 병원 쪽에 관련 기록을 요청했지만, 이미 의무기록은 폐기 상태였다. 부부와 ㄴ씨의 생물학적 친생자와 친부모를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이들은 병원에서 아이가 뒤바뀌어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므로 이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각각 5000만원을 지급하되, 출산 시점인 1980년 3월을 기준으로 연 5%의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했다.
의무기록이 남지 않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재판부는 “아이가 출생 병원에서 퇴원 후 자라는 동안 다른 아이와 뒤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ㄱ씨 부부에게 친생자가 아닌 ㄴ씨를 인도한 것은 병원장 ㄷ씨 또는 그가 고용한 간호사 등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며 “ㄷ씨는 불법행위자 본인 또는 사용자로서 ㄱ씨 부부 및 딸 ㄴ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김진희 판사는 판결문에서 “40년이 넘도록 서로 친부모, 친생자로 알고 지내온 원고들이 생물학적 친생자 관계가 아님을 알게 됨으로써 받게 될 정신적 고통이 매우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지연손해금 기산일(첫날로 잡는 날)을 아이가 뒤바뀐 날이 아닌 유전자 검사결과가 나온 다음 날인 지난해 5월18일부터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ㄷ씨의) 불법행위로 인한 ㄱ씨 부부와 ㄴ씨의 정신적 손해는 유전자 검사결과를 알게 된 때 비로소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