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생아를 진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나, 둘, 셋! 힘을 주세요!”
검은 머리의 산부인과 의사가 연거푸 외쳤다. 드디어 퉁퉁 부은 아기의 머리가 나왔다. 의사가 머리를 쑥 돌리자 아이가 두 눈을 번뜩 뜬다. 의사는 하늘색 전구 모양의 석션 기구로 아기 입안의 양수를 뽑아냈다. 아기의 어깨가 서서히 드러나고 몸도 쑤욱 빠져나왔다.
“앙~” 하고 우렁찬 울음을 내지르는 아기를 엄마 가슴 위에 올려놓자 곁을 지키던 아빠도 감동에 벅차 눈물이 차오른다. 그는 온몸에서 차오르는 감동이 입 밖으로 용솟음칠세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태반이 나오자 산모의 회음부를 꿰맸고, 한동안 모국어로 몇 마디 나누더니 병실을 나선다.
한참 동안 아기를 바라보던 간호사 둘은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동양 아기임을 고려해도 얼굴과 손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위로 치켜 올라간 눈꼬리, 작은 눈, 널찍한 눈과 눈 사이의 거리, 낮은 코, 납작한 얼굴도 모자라 쭉 뻗은 일자 손금은 손바닥을 가로질렀다. 슬쩍 봐도 다운증후군이 분명했다.
진찰을 마친 소아과 의사는 유전자검사를 의뢰했다. 아무래도 부모와 심각한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은데 병원에는 마땅히 통역할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태블릿피시의 통역 앱을 열고 부모와 드문드문 어렵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기를 낳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온 부모는 진단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기에게서 걱정스러운 심장 소리가 들렸다. 급히 확인한 심장 초음파에서 선천성 심장 결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바로 소아병원 신생아중환자실로 이송됐다. 부모는 어쩐 일인지 따라오지 않았다. 혹시나 엄마 상태가 걱정돼 아빠도 그 곁에 남았을까. 전화를 걸었으나 야속한 신호음만 반길 뿐이었다. 이틀 뒤 엄마는 퇴원했고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화려한 옷차림에 한창 유행하는 명품 가방을 들고 나타난 엄마는 먼발치에서 아이를 힐끔 보고는 뚱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사회복지사는 엄마의 정신건강을 염려해 병원 안팎의 상담 서비스를 알려줬으나, 엄마는 모든 도움을 거부했다. 일주일도 채 안 돼 유전자검사 결과가 나왔다. 아기의 진단명은 아기의 얼굴만큼이나 정확했다.
“유전자검사에서도 다운증후군으로 확인됐습니다.”
부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기를 쓱 한 번 쳐다보고는 곧바로 병실 문을 열고 떠났다. 아마도 한 줌의 희망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 견딜 수 없었으리라. 의료진은 굳이 부모를 쫓아가지 않았다. 시간이란 명약이 마음을 돌리게 하리라 굳게 믿었다.
어느덧 아기의 퇴원날이 다가왔다. 아기 병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 위 이름난은 아직도 텅 비어 있었다. 그사이 부모는 한 번도 아기를 보러 오지 않았고 연락도 없이 모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아기는 이름도 가져보지 못한 채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 가여운 아기의 소식을 들은 의료진은 한자리에 모여 이름을 지어줬다. 텅 빈 이름난에 ‘로건’이라고 크게 썼다. 드디어 아기에게도 이름이 생겼다.
출산 뒤 의도치 않게 아기와 떨어져야 하는 엄마를 무수히 봤다. 대부분의 엄마가 슬픔에 가득 찬 눈물을 흘린다. 몇 달 동안 사랑으로 품어 자신의 한 부분이 된 아기. 그 아기를 만나자마자 바로 헤어져야 한다니. 아마 팔 하나가 잘린 고통 정도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도 이 세상에는 존재했다. 단지 21번 유전자 하나가 더 있어서, 심장에 구멍이 있어서, 여느 아이와는 다르게 생겨서, 조금 더 많은 관심과 치료가 필요해서 머나먼 땅 미국에 아기를 두고 홀연히 떠난 엄마도 있었다.
1993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파리 시내에서 태어난 다운증후군 아기 28%가 버림받았다고 한다. 서구의 현시대에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다른 연구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완벽한 아이’를 바라는 부모의 심리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이를 타인지향적 완벽주의라 말한다. 완벽주의자 부모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식의 완벽성에 집착한다고 한다.** 자식의 완벽 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척도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안아줄 부모가 사라진 로건을 품에 안고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서쪽 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해가 지고 있었다. 저 푸른 바다 넘어 그 나라에도 해가 뜨고 지겠지. 지구 반대편에서 그들은 가끔 로건을 생각할까. 어떤 마음으로 아기를 두고 간 걸까. 다른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모국으로 돌아가 그토록 원하던 ‘완벽한 아기’를 낳을까. 자신이 저지른 일이 천륜을 저버리는 일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올까. 혹시라도 로건을 찾으러 다시 미국으로 올까. 로건이 성장해 낳아준 부모를 찾을까. 끝도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느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물음이 울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모래사장에서 반짝이던 별들이 하늘로 올라간 밤, 내가 쏘아 올린 무수한 기도 중 가장 절실한 것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로건이 이 사실을 평생 모르기를, 단지 유전자 수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사실만은 모르기를.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
*Dumaret, A. C., and D. J. Rosset. “Trisomy 21 and abandonment. Infants born and placed for adoption in Paris.” Archives Francaises de Pediatrie 50.10 (1993): 851-857.
**Piotrowski, Konrad. “Child-oriented and partner-oriented perfectionism explain different aspects of family difficulties.” Plos one 15.8 (2020): e0236870.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스텔라 황 교수는 의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3주마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