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무장 병원’이라 해도 의사의 진료행위를 방해하는 것은 업무방해죄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업무방해, 명예훼손, 폭행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업무방해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ㄱ씨는 2016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서울 용산구의 한 병원에서 난동을 부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병원은 비의료인인 줄기세포 회사 ㄴ회장이 차린 사무장 병원이었는데, ㄱ씨는 ㄴ회장에게 2015년 5억9천만원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상태였다. ㄱ씨는 수차례 병원에 찾아가 ㄴ회장과 친한 이 병원 의사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소리를 지르고, 심한 욕설을 하거나 계단에 드러누워 진료를 방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환자들에게 “여기서 연구하는 줄기세포는 다 사기”라고 말하고 직원을 폭행한 혐의(명예훼손, 폭행)도 받았다.
1심은 ㄱ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지만 2심은 업무방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벌금은 100만원으로 줄었다. 2심은 ㄴ회장이 사무장 병원을 차린 혐의(의료법 위반)로 기소돼 2021년 4월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는 점을 토대로 “이 사건 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ㄴ회장이 개설해 운영하는 병원이므로 병원 운영에 관한 업무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무장 병원의 운영과 진료행위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의료인이나 의료법인이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하는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도 “무자격자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관에 고용된 의료인이 환자를 진료한다고 해서 그 진료행위 또한 당연히 반사회성을 띠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법원은 “ㄱ씨의 행위는 의사의 환자에 대한 진료행위를 방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의료인의 진료업무가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인지는 의료기관의 개설·운영 형태, 해당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진료의 내용과 방식,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방해되는 업무의 내용 등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의료인인 의사의 진료행위도 별개의 보호가치가 있는 업무로 볼 수 없다고 단정해 무죄로 판단한 것은 업무방해죄 업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환송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