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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증인신문 나섰다가, 두 번 우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

등록 2023-04-02 14:00수정 2023-04-02 16:37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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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충격적인 일을 당했는데 왜 기억을 못해요?”, “싫었다면서 왜 저항하지 않았나요?”

10대 성폭력 피해자 ㄱ양이 지난 1월 증인신문을 위해 법정에 출석했다가 피고인 측 변호인에게 들은 질문이다. ㄱ양은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다”며 쏘아 붙이는 상대방 변호인 탓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심장이 쿵쾅거려 기억하는 부분도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제가 기억을 잘 못해서 재판을 망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끔찍한 기억을 어떻게 다 담아두고 있어요?” 반대신문이 끝난 뒤, ㄱ양은 심리치료 선생님에게 자책을 쏟아냈다.

2021년 12월 헌법재판소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19살 미만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 처벌법 제30조6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이 직접 법정에 서게 되며 ‘2차 피해’를 경험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와 마주칠 수도 있는 법정에서 피해를 복기하고, 반대신문에 응하는 일은 성인 피해자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정부는 미성년 피해자가 신문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바라기센터 등 아동·청소년 친화적인 공간에서 영상으로 증인신문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후속 조치를 마련했지만 시설이 부족한데다, 재판부가 수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직접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2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증인 출석현황’ 자료를 보면,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인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 사이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752명이 증인신문을 받았다. 영상증인신문 제도가 전국으로 확대된 지난해 7월 이후 증인 출석한 이들은 423명인데, 이 가운데 법정이 아닌 법원 내 화상증언실(67곳)과 해바라기센터(37곳)에서 영상증인신문을 한 경우는 168명(39.7%)에 불과했다. 김은정 변호사(법무법인 테헤란)는 “해바라기센터를 이용하려면 최소 2∼3주일은 기다려야 한다”며 “한 센터에 여러 지역의 피해자가 모이고, 인력도 충분하지 않아 신청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영상증인신문 과정에서도 미성년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노출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10회 이상 성폭력을 당한 한 아동은 매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상세히 답변할 것을 요구받았고, 성매매 피해 청소년은 ‘담배 피지 않냐’, ‘퇴학은 왜 당한 거냐’는 등 피해 사실과 관련 없는, 평소 행실을 꼬투리 잡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김지은 대구해바라기아동센터 부소장은 “사건 이후 치료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가던 아이들이 증인 신문 이후 다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고인의 반대신문 권리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으로 취약한 아동 청소년 피해자를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지은 부소장은 “미성년 피해자 반대신문 시 재판부나 아동 전문가가 질문을 점검한 뒤, 아동·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전달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복 회상·진술, 공격적 질문 등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 지난해 6월 ‘(미성년 성폭력 범죄) 피해자 신문은 전문적 교육을 받은 전문조사관이 아동 친화적인 공간에서 간접적으로 진행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법안은 9개월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토 중이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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