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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피해자가 벼슬인 줄 알아”…의뢰인 2번 울리는 불성실 국선변호사

등록 2023-04-11 05:00수정 2023-04-11 11:21

1인당 사건 수십건…제도 개선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피해자가 무슨 벼슬인지 아나…”

서울 한 구립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피해를 본 아이의 보호자 ㄱ씨는 지난해 6월 ‘피해자 국선변호사’ ㄴ씨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한동안 잠을 자기 어려웠다. 권경애 변호사의 ‘불성실 변론’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피해자 국선변호인’이 오히려 2차 가해성 발언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민사회와 법조계에서는 올해로 도입 12년째인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ㄱ씨가 <한겨레>에 제공한 녹취록을 들어보면, 지난해 6월15일 ㄱ씨는 ㄴ씨에게 경찰에 제출할 소견서를 써 달라고 요청했지만, ㄴ씨는 “자료가 없다”,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라”며 거부했다. 이에 ㄱ씨가 “소견서를 써줄 수 없다고 한 부분에 대해 문제 삼겠다”고 하자 ㄴ씨는 “그건 알아서 하라”, “피해자가 무슨 벼슬인지 아나”라고 답했다. 법무부는 지난 2012년부터 성폭력·아동학대·장애인 학대 등 범죄 피해자를 위해 사건 초기부터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피해자 법률지원을 하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ㄱ씨는 정당한 요구를 했음에도 국선변호사로부터 2차 가해성 발언을 들은 것이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ㄱ씨는 “가해자로부터의 고통에 이어 피해자 국선변호인으로부터 또다시 간접적인 가해를 받았다. 더는 국선변호사를 믿을 수 없어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게 됐다”고 했다. ㄴ씨는 지난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그만둔 지 1년이 넘었다”고 했다.

ㄱ씨뿐 아니라 성폭력·아동학대·장애인 학대 등 피해자에게 선임되는 국선변호인으로부터 적절한 법적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2차 가해를 당했다는 피해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1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40개 소속 성폭력 상담소를 통해 220건의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 이용 경험 조사를 진행한 결과 약 44.5%(98건)가 불성실한 태도를 경험했고, 약 10.6%(23건)는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인한 2차 피해를 호소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한 달 60건의 상담 중 절반이 피해자 국선변호인에 대한 불만”이라고 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들은 현 제도가 변호사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 국선변호인들은 형사사건의 피고인(가해자)을 변호하는 법원 소속 ‘국선변호인’보다 열악한 처우를 받지만, 요구되는 역할은 더 많다는 입장이다. 실제 법무부와 법원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법원 소속 국선변호사(전담 234명·비전담 7098명)는 1인당 약 16.67건을 맡았다. 법무부 소속 피해자 국선변호사(전담 35명·비전담 600명)는 1인당 약 61.67건을 맡았다. 투입되는 예산 차도 컸다. 법원은 1건당 약 49만9116원을, 법무부는 사건 1건당 약 22만9820원을 투입했다.

국선변호인 활동 경험이 많은 서혜진 변호사(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보수 규정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피고인 국선변호사의 보수가 현실화되는 추세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면서도 “2차 가해 방지 등을 위해 피해자 국선변호사들에게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피해자의 관점을 익힐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수경 대한변호사협회 국공선변호사회 회장은 “피해자 국선변호사들은 법적 조력 외에도 정서지원 등의 요구받는 경우가 있어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들은 전문적인 법적 조력에 집중하고, 피해자 지원은 전문 센터 등에서 맡는 방식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런 문제제기에 법무부 관계자는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향후 보수체계 개선 등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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