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시음 행사를 가장해 ‘마약음료’를 나눠준 일당이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진술한 가운데 구인·구직사이트에 유사한 사례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고액 알바’로 가장해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면 구직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 범죄에 연루되는 구조다. 구인·구직사이트는 ‘고액 알바를 빙자한 보이스피싱 가담자 모집글에 유의하라’는 공고를 내걸었지만, 구직자들은 “(구인 게시판) 관리를 해달라”며 적극적인 조처를 요구하고 있다.
11일 경찰 설명을 종합하면, 마약 음료를 학생들에게 나눠준 4명 중 3명은 ‘4시간에 15만원을 주겠다’는 구인·구직사이트의 모집글에 응하면서 이번 범행에 연루됐다고 한다. 마약음료 제조책인 길아무개(25)씨는 강원도 원주 자신의 집에서 우유에 마약을 섞어 마약음료를 만들었고, 퀵서비스와 고속버스 택배 등으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전달했다. 비대면으로 물품을 전달 받은 아르바이트생들은 마약이 들어있는 줄 모르고 음료를 학생들에게 배부했다. 아르바이트생 4명 중 2명은 마약음료인 줄 모르고 마시기도 했다. 마약음료를 건넨 아르바이트생 4명은 경찰에 자수하거나 검거됐다.
경찰도 이번 사건을 마약과 보이스피싱이 결합한 ‘신종 범죄’로 규정한 만큼, 갈수록 교묘해지는 범죄 수법을 구직자가 알아채긴 힘든 상황이다. 이 사건과 관련한 모집글이 올라온 한 구인·구직사이트에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반드시 일을 시키는 사람을 만나본 후에 일하라. 최근 관련 사기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는 1년 전 공지사항이 올라와 있었지만, 일주일 전 댓글에는 “(해당 사이트를 통해) 문자가 와서 일했는데 보이스피싱 수금책이었다. 경찰에 신고하니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만 했다”는 구직자의 하소연이 달렸다.
또 다른 구인·구직사이트에도 ‘채용공고를 가장한 보이스피싱 범죄 주의’라는 공지가 떠 있지만 구직자들은 “유의하라고만 할 게 아니라 (사이트에서) 너무 방치하는 것 같다”,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채용공고를 올릴 때 부적합한 부분을 먼저 거르는 게 맞다”, “모니터링을 해달라”며 댓글을 달았다.
이처럼 고액 아르바이트 모집글로 구직자를 유인해 범죄에 가담시키는 사례는 늘고 있다. 2021년 경찰대 <경찰학연구>에 실린 ‘보이스피싱 전달책의 가담경로에 관한 연구’(홍순민 경감) 논문을 보면, 보이스피싱 전달책의 가담경로는 구직사이트를 통한 경우가 대부분(70.6%)이었다. 이에 구인·구직사이트에 게재된 모집글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맡은 일에 비해 보수가 고액이라거나 중간에 이상한 상황이 감지되면 당사자가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관련 부처에서도 이를 점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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