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아침 8시14분 김포도시철도 사우역에서 풍무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고병찬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엔 ‘압사’당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껴요.”
12일 아침 8시30분께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에서 만난 강민주(25)씨는 아침 출근길마다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매일 김포 장기역에서 열차를 타고 김포공항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탄 뒤, 서울에 있는 직장에 출근하는 강씨는 이날도 승객이 꽉 들어찬 열차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강씨는 “2019년 개통했을 때부터 김포도시철도를 이용하는데, 열차는 항상 만원이었다”며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뒤 지방자치단체와 관련기관들이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일상 속에서 ‘지옥철’ 압사 공포를 느낀다. 전날인 11일엔 김포도시철도 김포공항역에서 10대 여고생과 30대 직장인이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대중교통 혼잡도를 낮추기 위한 수요 분산뿐 아니라 무정차 통과와 같은 직접 통제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2일 아침 8시30분께 김포도시철도 김포공항역에서 열차를 내린 시민들이 환승을 위해 계단으로 향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이날 아침 8시14분께 기자가 탑승한 김포도시철도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빽빽했다. 사우(김포시청)역부터 종착역인 김포공항역까지 14분간 탑승이었지만, 180㎝의 기자도 가슴 압박이 느껴지고 호흡이 곤란했다. 김포공항역 직전 역인 고촌역에서는 열차가 만원인데도 10여명이 밀고 들어오는 통에 키 작은 여성들이 가슴이 답답한 듯 숨찬 소리를 내기도 했다.
김포도시철도는 경기 김포시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탓에, 구래역(김포 구래동)부터 누적된 승객들은 5·9호선 환승역인 김포공항역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지하철에서 ‘쏟아져’ 내린다.
이에 승객들은 전날의 실신 사태가 “놀랍지 않다”고 했다. 매일 김포도시철도를 타고 출근한다는 40대 여성은 “항상 열차를 탈 때마다 숨 막힌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 기사를 보고도 놀랍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6일에도 도시철도 누리집 ‘고객의 소리’ 게시판엔 ‘김포골드라인 압사 사고의 위험성’이라는 제목의 이용객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김포도시철도는 출퇴근 시간대에 정원 172명(열차 2량 기준)보다 2.15배 많은 최대 370명이 탑승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김포도시철도 쪽은 “출근 시간대 3분7초인 배차 간격을 증차해 내년 9월엔 2분30초까지 줄이려고 한다”고 했다.
12일 아침 8시30분께 김포도시철도 김포공항역에서 철도안전도우미가 사람으로 꽉찬 열차 안을 보고 있다. 고병찬 기자
문제는 국내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살며 대부분 서울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탓에 단순히 배차 확대만으로 ‘지옥철’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부 시민들은 ‘트라우마’를 겪고 출근길 지하철 탑승을 포기하기도 한다.여의도에서 9호선을 타고 강남 직장으로 출근하던 직장인 신아무개(34)씨는 지난해 봄 만원 열차에서 누군가의 팔꿈치에 명치를 맞고 3초간 숨을 쉬지 못하는 경험을 한 뒤 다시는 출근 때 9호선을 타지 않는다. 신씨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지하철에서 내릴 수조차 없었다”며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다른 노선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교통시스템공학)는 “경전철인 김포도시철도만으로 김포시 50만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전용차로를 신설해 고속버스를 운영하고, ‘GTX(광역급행철도)-D’ 노선 등을 설치하는 등 수요를 분산해야 한다”며 “서울의 경우에도 일본 도쿄처럼 과하게 혼잡할 경우 승차를 강제로 막거나 무정차 통과하는 등의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도 철도안전법 49조에 따라 안전인력 등은 승객이 과밀할 때 열차 탑승을 제지할 권한이 있지만, 민원 우려로 지하철 안전도우미들이 현장에서 강하게 제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밖에 현실적으로 기업에서 시차출근제 등을 적극 활용해 경직된 출퇴근 시간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