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에서 ‘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모임’ 회원들이 51년 만에 열린 납북귀환 어부들 재심 사건 첫 재판에서 검찰이 아무런 의견을 안내고 재판을 연기한 것과 관련해 검찰의 직무유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51년의 기다림이 10분 만에 물거품이 됐다. 납북귀환 어부 피해자 김영수(69)씨는 12일 “검사의 무책임한 태도는 50년을 손꼽아 기다린 우리를 짓밟고 두 번 죽이는 처사이자 직무유기”라며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원통함을 풀어달라”고 외쳤다. 지난 3월31일 검찰의 무죄 구형을 기대하며 춘천지법에 갔지만 ‘검찰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재판 연기를 요청한 검사에 대한 울분을 토해낸 것이다.
강원 동해와 전남 보성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납북귀환 어부 피해자들과 유족 2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재심 사건에 무성의한 검찰을 규탄하며, 공판 검사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법률대리인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대검찰청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납북귀환 어부 사건은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가 귀환한 어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법 수사를 받고 처벌받은 것을 일컫는다.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뒤 법원의 재심을 거쳐 무죄를 선고받고 있다. 1972년 9월 귀환한 납북어부 32명(생존자 20명)의 재심은 2022년 11월 춘천지법이 개시 결정을 내렸고, 첫 재판을 3월31일로 잡았다. 이를 2월 초에 공지했는데도 검찰은 재판 연기를 요청한 것이다.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대표 김춘삼(67)씨는 “93살이 된 피해자가 (3월31일) 재판정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야 했다. 검찰의 폭력이자 횡포”라고 지적했다. “왜 검찰 선배들이 잘못한 일을 오늘날까지 질질끌고 가는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고도 했다. 15살 때 납북된 김씨는 1년 뒤 귀환됐지만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2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다.
납북귀환 어부 피해자 김성학(73)씨는 “당시 검사들이 버젓이 (납북귀환 어부 사건이 경찰의) 조작인지 알면서 같이 조작했다. 검사 출신인 대통령이 누구보다 이 사건을 해결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1971년 납북돼 이듬해 한국으로 귀환됐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바 있다. 최정규 변호사는 “앞으로 재심 받을 분이 1천명 가까이 더 있다. 전국 법원에서 납북귀환 어부 재심 재판이 열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식으로 연기하면 50년 넘게 기다린 이들을 두번 울리는 꼴이 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2022년 2월 진실화해위원회는 납북귀환 어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대규모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직권조사 대상자만 982명에 달했다. 지난 2월 진실화해위원회는 1968년 납북귀환 어부 150명이 간첩으로 억울하게 몰렸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하기도 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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