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형 집행시효(30년)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을 추진한다. 올해 11월이면
국내 최장기 사형수가 복역 30년을 채우게 되는데 그를 계속 구금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자 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이다. 구금 절차를 이어갈 보완 입법 대신 언제라도 사형을 집행할 수 있도록 집행시효 자체를 무기한으로 늘린 것이어서, 세번째 헌법재판 심판대에 선 사형제에 이어 또 다른 위헌 논란이 예상된다.
법무부는 형법상 형의 시효 기간에서 사형을 삭제해 시효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12일 밝혔다. 현행 형법 77조와 78조는 ‘재판을 통해 사형이 확정된 뒤 집행을 하지 않고 30년이 지나면 시효가 완성돼 형 집행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놓고 법조계 안팎에선 30년이 지나면 구금 역시 중단되느냐를 놓고 “30년이 지나면 석방해야 한다” “사형 대기는 시효가 진행되지 않아 계속 구금할 수 있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에 법무부는 “살인죄 등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2015년 폐지됐지만, 집행시효는 그대로 유지돼 공소시효와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수용 기간엔 시효가 진행되는지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어 논란 소지가 있는 만큼 법 개정을 통해 모호성을 없애고 형사사법 절차의 공백을 방지하겠다”고 설명했다.
사형수 원아무개씨가 사형제도를 연구하고 있는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경찰경호과)에게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보낸 34통의 편지. 편지에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죄를 뉘우치는 내용이 담겼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국은 1997년 12월 이후 사형집행이 중단돼 올해 11월부터 ‘사형 집행시효 30년’을 채우는 장기 사형수가 나오기 시작해, 2027년이면 그 수가 15명에 이른다. 1992년 강원도 원주시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을 숨지게 한 원아무개(66)씨가 시효가 완성되는 첫 장기수다. 2018년부터 원씨와 연락하며 사형제를 연구중인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경찰경호과)는 “정부가 3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서 사형수의 신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진즉 고민했어야 하는데 뒤늦게 형법을 개정하는 것”이라며 “집행 시효를 폐지해도 원씨에 대해선 소급 적용되지 않게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원씨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시사했다.
시민사회에서는 ‘사형제 폐지’ 논의를 서두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은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 앰네스티는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장유식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감시센터 소장)는 <한겨레>에 “사형제의 실효성 논란과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집행을 못한지 25년이 지났음에도 사형제 폐지 결단에 이르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다”며 “원씨 사례를 계기로 사형제 폐지 논의를 피하지 말고, 헌법재판소에 제기돼 있는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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