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누리집 ‘배드파더스’를 비공개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 접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ㄱ씨는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ㄴ씨와 이혼한 뒤 미성년 자녀 둘을 홀로 키우고 있다. ㄴ씨는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이행명령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지금까지 양육비를 보내지 않고 있다. ㄴ씨가 여태껏 주지 않은 양육비는 약 5천만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ㄱ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에 ‘한시적 양육비 지원’ 신청을 했다.
이행원은 ㄱ씨에게 양육비 360만원을 긴급 지원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ㄴ씨에게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지급액 납부고지서’를 보냈다. 정부가 ㄴ씨를 대신해 일부 납부한 양육비 360만원을 강제 징수하겠다고 알린 것이다. 하지만 고지서는 반송됐다.
국가가 이혼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를 대신해 한부모가족에 양육비 일부를 지급한 뒤 이를 세금의 형태로 강제 징수하고 있지만, 양육비 체납자 등에게 고지서가 실제 송달된 비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2015년 4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방문한 한 시민이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여성가족부 산하 이행원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양육비 체납자 168명(총 4억6천만원)의 주민등록 주소지로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지급액 납부고지서를 보냈지만, 양육비 체납자 본인이나 그 가족 등에게 고지서가 직접 송달된 사례는 76건(45.2%)에 불과했다.
2021년 6월 시행된 ‘양육비이행법’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양육비 체납자를 대신해 정부가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가족에게 한시적으로 양육비(아동 1인당 20만원씩 최대 1년)를 긴급 지원한 뒤, 양육비 체납자에게 납부 고지서를 보내 지급한 금액을 강제 징수를 할 수 있게 됐다. 양육비 체납자에게 납부고지서와 독촉장을 1개월 간격으로 각 2회씩 등기우편으로 보낸 뒤에도 이를 납부하지 않으면 곧장 재산 압류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제 징수의 출발점인 납부고지서 송달조차 제대로 이뤄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행원이 양육비 체납자 168명에게 보낸 납부고지서 가운데, 92건(54.8%)은 채납자의 실제 거주지가 아니거나 문이 잠겨 있어 전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송됐다. 송달이 이뤄진 76건 중에서도 양육비 체납자가 고지서를 직접 수령한 사례는 30건에 불과했고, 부모와 형제·자매, 재혼배우자 등 가족들이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행원 관계자는 “주로 양육비 체납자의 부모가 고지서를 수령하는데, ‘(양육비 체납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지서 송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부가 지급한 양육비를 강제 징수로 환수한 사례는 25건(14.9%), 금액으로는 1600만원(3.4%)에 그쳤다. 고지서 송달률이 낮아 자진 납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양육비 환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압류 처분이 가능한 소득·재산 정보를 더 많이 파악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연방 양육비이행관리국(OCSE)이 각 주 금융기관에 양육비 체납자의 양육비 미지급 내역을 보내면 금융기관이 그의 계좌정보를 회신하고, 양육비이행관리국이 그 정보를 각 주 양육비이행관리기관에 보내 주법에 따라 압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선 양육비 체납자의 금융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조회할 수 없다. 이행원 관계자는 “예금 계좌를 압류당할 수 있다고 하자, 양육비를 상환하겠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며 “예·적금 등의 금융정보를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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