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5월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국가 손해배상 소송 기자회견의 모습. 한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1970~80년대 부랑인들을 교화하겠다며 세워진 형제복지원에 불법 구금당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2년 만에 재개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서보민)는 19일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김아무개씨 등 13명이 제기한 국가 손해배상 소송의 첫 재판을 열었다. 지난 2021년 5월 피해자들이 84억여원을 청구하자 재판부는 국가가 25억원을 배상하라고 강제조정하려고 했으나 법무부의 이의 제기로 조정이 결렬됐다. 강제조정은 재판부가 원고와 피고 간 화해 조건을 결정하는 민사조정 절차다.
이날 재판은 2022년 8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공식 인정한 뒤 처음 열린 재판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피해자 쪽 대리인은 “계속 주장해왔듯이 국가의 불법 행위가 있었고, (앞서) 조정에 임할 때 (국가에서도) 책임을 인정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쪽 대리인은 “진실화해위 결정이 이제 막 나왔기 때문에 검토한 후 (입장을) 말하겠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 결정 통지서가 피해자별로 전달돼 원고 전체의 손해배상 내용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 밖에도 소멸시효가 완성됐고 손해배상 금액 등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를 피해자가 안 날로부터 3년’ 혹은 ‘불법 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사라지도록 소멸시효를 규정한다. 피해자 쪽 대리인은 진실화해위가 진실 규명한 사건은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반박했다.
한편, 재판부는 피해자 쪽 대리인이 신청한 피해 당사자들 법정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사정이 각각 다르고, 손해 산정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라 따로 본인 신문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피해자 쪽은 “(형제복지원 이후)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운 점 등을 입증하겠다”며 피해 당사자들의 법정 진술을 신청했다.
형제복지원에서는 지난 1975년부터 12년간 고아와 장애인 등 3천여명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동과 가혹 행위 등을 일삼았다. 확인된 사망자만 650여명에 달한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 규명을 신청한 544명 가운데 1차 191명의 피해를 인정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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