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트윈데믹 우려에 붐비는 소아과. 연합뉴스
“새벽 5시에 겨우 대기표를 뽑았는데, 접수 시간에 늦었다고 다시 대기하라고 하더라고요.”
서울 마포구에서 6살 아이를 키우는 김아무개씨는 지난 8일 열이 39.7도까지 오른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허탕을 칠 뻔했다. 아침 8시30분에 진료를 시작하는 어린이전문병원인 ㄱ병원은 ‘번호표 발급기’를 두고 있는데, 새벽 번호표를 뽑았지만 접수 시간(아침 8시20분)에 늦었다는 이유로 번호표가 무효가 됐기 때문이다.
다른 병원을 또 찾아나서기엔 아이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축 늘어진 아이를 본 간호사는 김씨에게 오전 진료를 배정해줬다. 의사는 폐렴이 의심된다며 입원소견서를 써줬다. 김씨는 “입원의뢰서를 받아 서울대병원에 갔는데, 3시간을 기다려 만난 응급실 의사는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장기손상이 올 정도가 아니면 입원이 어렵다’고 했다”며 “애 아픈 것도 서러운데 찾아다니고 기다리고, 병원 가기가 무섭다”고 했다. 8시간 ‘병원 뺑뺑이’ 끝에 김씨는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등 필수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사이 ‘소아과 대란’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야외 활동은 늘면서 호흡기 환자는 급증했는데 병원은 턱없이 부족해 부모들은 “병원 가기가 두렵다”고 입을 모은다.
질병관리청이 21일 발표한 ‘감염병 표본감시 주간소식지’를 보면, 4월9~15일 외래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계절 독감) 의심환자는 18.5명으로 5주 전(11.7명)에 견줘 58.1% 늘었으며, 아데노바이러스 등 바이러스성 급성호흡기감염증 입원 환자 수 역시 한달 사이 93.9% 증가했다.
4살·5살 두 남매를 기르는 워킹맘 김예림(35)씨 역시 지난 9일 아침 8시30분에 아이의 폐렴 증상 때문에 소아과를 찾았다가 약 처방을 받는 데까지 3시간을 썼다. 김씨는 “병원 문 열리기 전에 미리 번호표를 받았는데 43번이었다”고 말했다.
6살 아이를 키우는 심아무개씨는 지난 24일 동네 소아과 진료를 위해 진료 1시간 전인 아침 7시30분께 병원으로 향했다. 심씨는 “(재진을 위해) 3일 뒤 다시 오라는 병원 말이 제일 무서울 정도”라며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애를 키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병원 예약이 힘들다 보니 비대면 진료를 찾는 부모들도 많다. 3살·9살 아이를 키우는 황아무개(39)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동네 소아과 원격 대기를 접수시키려고 했는데 오전·오후 접수가 각각 2분·5분 만에 마감됐다”며 “주변에 물어보니 이런 이유로 병원 가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4살 아이를 키우는 김아무개씨는 “소아과 예약을 몇번 시도하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르면 5월 코로나19 감염병 위기경보 ‘심각’ 단계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부모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식 선언을 하면, 정부는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낮출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회에는 현재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5건 발의돼 있지만, 의료계와 산업계의 갈등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심씨는 “비대면 진료마저 사라지면 대책이 없다”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든, 의사를 볼 수 있게 해주든 어떤 대책이든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1월 17년째 3000여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정원을 늘리기 위한 의정협의체를 열고 논의를 시작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2월 의협이 간호법 국회 본회의 상정에 반발해 5주간 중단됐던 논의는 지난달 16일 비로소 재개됐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