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별세한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가 2021년 12월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했다. 연합뉴스
“내가 바람은, 바람은…100살까지 예식장을 운영하고, 그다음에는 전화번호 적인 신랑·신부 장부를 배낭 속에 메고 전국 일주하겠다, 결혼한 사람들 얼마나 잘사는지 찾아보겠다. 희망사항이죠.” (2021년 10월 <티브이엔>(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에서)
55년간 형편이 어려운 부부 1만4천여쌍에게 무료 결혼식을 올려준 경남 창원의 신신예식장 백낙삼 대표가
향년 93살의 나이로 지난 28일 별세했다. 100살까지 예식장을 운영하겠다는 꿈은 아내 최필순(83)씨와 아들에게 맡기고 그는 30일 발인 뒤 하늘로 떠났다.
<티브이엔>(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한 백낙삼 대표. tvN 유튜브 채널 갈무리
<티브이엔>(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한 백낙삼 대표. tvN 유튜브 채널 갈무리
<티브이엔>(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한 백낙삼 대표. tvN 유튜브 채널 갈무리
백 대표 부부의 이야기는 그동안 방송 프로그램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많이 알려졌는데, 한승일 작가가 2021년 낸 책<신신예식장>에도 백 대표의 삶과 부부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있다.
단칸방 하나에 13명이 가족이 붙어살았던 그에게 결혼은 그림의 떡이었다. 주변의 성화에 맞선을 나간 그는 지금의 아내에게 ‘자신과 결혼하면 고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뒤 결혼식을 미루고 1년 넘게 돈을 벌러 경남 일대를 돌아다녔다.
닥치는 대로 돈을 번 그는 1967년 경남 마산시(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에 3층 건물을 사서 신신예식장을 열었다. 자신들처럼 결혼식을 제때 올리지 못하는 신혼부부를 돕고자 사진촬영비만 받고 무료로 결혼식을 올려주다가 나중에는 모두 무료로 했다. 1만4천여쌍의 결혼을 올리며 1만번 이상은 백 대표가 주례를 섰다고 한다. 아내 최씨는 신부의 부케를 직접 만들었고, 예식장 관리·청소·주차, 폐백준비, 촬영 보조 등 다섯가지 일을 한다고 해서 ‘5실장’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백 대표는 매년 부부의날·결혼기념일, 1년에 두번 손편지를 쓰며 아내에게 ‘사랑고백’을 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백낙삼 대표가 아내 최필순씨에 보낸 편지. <한국방송>(KBS) 프로그램 ‘인간극장’ 방송화면 갈무리
백 대표는 점점 비싸지는 결혼식에 한탄하기도 했다. 예식장 입구에 백 대표는 ‘1억짜리 결혼식 창원에서 먹힐까’라는 신문기사를 오려서 붙여두고, 밑에다 자필로 “해도 해도 너무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한평생 모아도 1억원을 못 모은 사람도 있는데 결혼식만 하는데 1억이라니”라고 한탄을 적었다.
책은 ‘아직도 많은 꿈’이란 대목에서 백 대표가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꿈을 소개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꿈은 6·25전쟁으로 이루지 못했고, 20대 시절 꿈인 영화배우는 영화 <국제시장>에 신신예식장이 배경으로 사용되고 짧게 출연하면서 이뤘다. 다른 꿈 하나는 자서전을 내는 일인데, 틈틈이 원고지에 지난 일들을 기록했다고 한다.
책을 보면 그는 예식장 사무실 한쪽에 언제 쓸지 모를 영정사진이라며 자신과 아내의 사진을 걸어뒀다고 한다. 사진 뒤에는 유쾌한 어조로 짧은 유언도 써놨다.
“아들딸, 손자 손녀들이여! 비록 저녁거리 없이 시작한 살림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한없이 원 없이 가족과 더불어 한평생을 즐겁게 살았노라. 이제 오복을 누리다가 생을 마감하노니 너희들은 오늘 너무 슬퍼하지 말고 호상이니 웃음꽃을 피우며 경사스럽게 맞이하라.”
28일 별세한 백낙삼 대표가 운영해온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신예식장 전경. 연합뉴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