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노동자들의 노동은 그 가치에 비해 매우 저평가돼 있다. 사진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가 2021년 7월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필수노동자 최저임금 인상 촉구 기자회견'을 주최하고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방역 업무에 나선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처럼 특정 분야의 노동이 멈추면 다른 이들의 일상까지 무너지는 ‘결코 멈출 수 없는 노동’이 있다. 돌봄, 운송, 청소·환경, 배달 등으로 대표되는 ‘필수노동자’들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들이 누구이며, 얼마나 되는지 등 현황과 노동 실태는 충분히 파악되지 못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필수노동자 실태와 정책과제>(손연정 외)를 보면, 우리나라 필수노동자는 2022년 현재 486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17.3%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필수노동자의 전체 규모를 공식 통계로 파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료: 한국노동연구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사 대상 기간 첫해인 2015년 397만명이던 필수노동자는 이듬해 400만명대로 올라선 뒤 해마다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2021년(460만명)과 2022년(486만명)에는 한해 필수노동자가 20만~30만명씩 크게 늘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필수노동자를 돌봄서비스 종사자, 보건의료 종사자, 운송서비스 종사자, 환경미화 종사자 등 네 범주로 나눴다. 세부 직업별로는 운송업 필수노동자가 149만명(전체의 30.7%)으로 가장 많았다. 같은 운송업 안에서는 택시·버스·화물차 자동차 운전원이 여전히 가장 큰 비중(101만명·67.8%)을 차지했지만, 배달원이 45만명으로 최근 8년 새 10만명 가까이 늘었다. 돌봄서비스(130만명), 청소 및 환경미화원(114만명), 보건의료(93만명) 종사자가 뒤를 이었다.
성별로 구분해보니, 여성 필수노동자는 2015년 204만명이던 게 2022년 274만명까지 늘었다. 남성 증가 폭(193만명→212만명)과 견줘 세배 이상 많은 수치다. 필수노동자의 ‘여성화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고령화 현상도 뚜렷했다. 2022년 현재 60살 이상이 35.1%, 50대 24.2%로 50살 이상 중고령층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필수노동자 70%가 30인 미만의 사업장에 속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서도 열에 셋은 5인 미만 사업장(31.5%), 5~9인 15.6%, 10~29인 22.2% 차례였다.
2022년 기준 이들의 평균임금은 월 252.5만원이었다.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339.2만원)의 74.4% 수준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필수노동자들의 임금 수준도 열악해 환경미화 103만원, 돌봄종사자 161만원, 운송 183만원, 보건의료 290만원 등이었다.
필수노동자의 개념에 대해선 아직 일치된 정의가 없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대면 노동이 불가피한, 사회와 개인의 기초적인 삶이 유지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지칭한다. 필수업무종사자법에는 구체적인 필수업무와 필수노동자를 관련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하도록 하고 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필수노동자는 낮은 고용안정, 경제적 어려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란 공통적 문제를 겪는 등 가치에 비해 노동이 극히 저평가돼 있다”며 “역량 강화 지원, 직무급과 연공급적 속성을 동시에 지닌 독일식 ‘사회적 직무급’ 임금체계 도입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두루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전 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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