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쇠사슬 행위극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농업·제조업·건설업 등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려는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비전문취업비자(E-9)로 2013년 한국에 들어온 네팔인 ㅌ(44)씨는 지난 4월8일 충남 아산의 한 공장에서 체류 기간(최대 4년10개월)을 넘겨 한국에서 일하다 정부의 불법 체류 단속에 적발됐다. 단속 과정에서 어깨가 탈골됐지만 ㅌ씨는 곧장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에 수용됐다. ㅌ씨가 밤새 울며 고통을 호소하자 당국은 이튿날에야 그를 병원에 데려갔다. 의료진은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ㅌ씨는 다음날 강제 출국됐다. ㅌ씨의 진료비(104만원)는 함께 붙잡힌 다른 네팔인에게 청구됐다. 네팔로 돌아간 ㅌ씨는 최근 “과잉 단속으로 부상을 입은 것, 치료비를 다른 네팔인에게 부담케 한 것, 치료 끝나지 않은 사람을 서둘러 출국시켜 인권을 침해한 상황을 조사해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ㅌ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인권침해가 재발되지 않게 방지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불법 체류 이주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인권 침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인 등록증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과 합법 체류더라도 법이 허락하지 않는 노동을 하는 이주민을 모두 ‘불법 체류 외국인’으로 보고 단속·추방하고 있다.
지난 3월25일엔 인천의 한 클럽에서 태국 유명 가수가 공연을 하던 중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이 태국·라오스 국적의 불법 체류 이주민 83명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다른 나라의 문화 공연을 망가뜨려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같은달 12일엔 경찰이 대구에서 예배가 진행 중인 교회를 급습해 필리핀 불법 체류 이주민 9명을 체포했다. 종교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부상이 잇따르고, 인권침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법무부는 불법체류 상시단속체계를 통해 엄정한 법질서를 확립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3일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내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1만2833명을 내보내고, 1만2163명을 자진 출국시켜 불법 체류 이주민 2만5천명을 감축했다”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유연한 출입국 이민관리 정책의 기본 전제는 엄정하고 예측 가능한 체류 질서이므로 앞으로도 불법 체류 단속 등 엄정한 체류 질서 확립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의 이런 단속 노력은 반인권적일 뿐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국민이 일하지 않으려 하는 농업 분야에선 불법 체류 이주민의 노동력이 없으면 농사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엄진영 연구위원이 402개 농가를 조사·분석한 자료 <농업부문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와 과제>를 보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가 가운데 91%가 불법 체류 이주민을 고용하고 있었다.
단속이 강화되면 불법 체류 이주민이 음지로 숨어들어 더 위험한 노동·거주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3월4일엔 경기도 포천의 한 돼지 농장에서 불법 체류 상태였던 60대 태국인이 숨진 뒤 시신이 유기된 채 발견됐고, 2월23일엔 전북 고창에서 태국 국적의 불법 체류 이주민 부부가 난방비를 아끼려 장작불을 떼다 질식해 숨졌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한겨레>에 “정부의 무차별 단속만으로는 미등록 이주민 수를 줄이지 못하고 각종 인권침해만 양산할 뿐이다. 농어업과 산업현장에도 문제를 일으켜 경제에 타격을 입힌다”며 “코로나19 시기에는 이주노동자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 쳐 미등록 이주민을 데려다 써 놓고, 이제 와서 내쫓기 급급한 한국 정부는 너무 위선적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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