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10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119 특수구조대원 등이 폭우로 휩쓸린 실종자들을 찾는 작업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 주검 다섯 구를 봤습니다. 30대 초반인데 40(살) 넘어서 멘탈(정신)이 버텨주려나 싶네요.”
지난 3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자신을 ‘소방관’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하루 동안 추락, 극단적 선택, 고독사 등을 이유로 숨진 이들의 주검을 다섯 구나 봤다며 “요즘 꿈자리가 사나운데 방금도 가위에 눌렸다”고 토로했다. 해당 글에는 “고생이 많네요. 정기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소방관들 심신 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정신적 피로감이 엄청날텐데 고맙습니다” 등의 응원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업무 특성상 참혹한 사고 현장을 자주 목격할 수밖에 없는 소방관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비율은 일반 국민의 10배에 이른다. 지난 2014년 국민안전처가 전국 소방관 3만9185명을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진행한 결과 2468명(6.3%)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어 유병률이 일반인(0.6%)의 10배로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소방관 가운데 정신건강 고위험군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소방청이 공개한 ‘2022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만4056명 가운데 5.4%(2906명)가 극단적 선택 고위험군으로 파악됐다. 2021년 4.4%(2390명)에서 1%포인트 늘어난 결과다. ‘극단적 선택 생각을 1회 이상 했다’는 응답도 9.2%(4967명)로, 지난해 8%(4319명)보다 늘었다. 10명 가운데 3명은 수면장애를 호소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10년 간 재직 중 사망한 소방관은 228명인데 이 가운데 47%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였다. 2020년 법원은 구급 업무를 하다 정신질환을 얻어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관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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