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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진짜 남자’ 규범서 벗어나야…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이로워”

등록 2023-05-18 08:00수정 2023-05-18 14:58

인터뷰| ‘남성해방’ 저자 옌스 판 트리흐트
네덜란드 남성 해방 운동단체 이멘시페이터 재단 설립자인 옌스 판 트리흐트가 1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네덜란드 남성 해방 운동단체 이멘시페이터 재단 설립자인 옌스 판 트리흐트가 1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남자들은 왜 그럴까.’

 옌스 판 트리흐트(54)가 지난 1990년대 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여성학과에 입학한 뒤로 줄곧 탐구한 주제다. 그는 당시 사회 운동에 참여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쟁과 빈곤, 기후위기, 인종 차별주의 등 각종 부정의에 맞섰다. 그 중엔 여성 대상 폭력도 있었다. 트리흐트는 “내가 마주친 여성들은 투혼을 불살랐고, 최선을 다해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웠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트리흐트는 함께 사회 운동을 하던 집단 안에서도 여성 대상 폭력이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됐다. 성폭력이 더 이상 남의 일일 수 없었다. 그즈음 여성 4명, 남성 1명과 한 집(공유주택)에서 공동 생활을 하면서 매일 페미니즘에 관헤 이야기를 나눴고, 사람들이 더 평등해질 방법이 무엇인지 골몰했다. “우리가 맞서야 하는 세상의 모든 불평등과 부정의는 남성에게서 비롯됐다.” 트리흐트가 내린 결론이었다.

네덜란드 남성 해방 운동단체 이멘시페이터(‘해방자’라는 뜻) 재단을 2014년 설립하고, 4년 뒤에 책 <남성해방>을 쓴 트리흐트를 지난 16일 젠더교육플랫폼효재의 도움을 얻어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날 열린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개소 5주년 기념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한 그는, 남성적인 것을 여성적인 것보다 높게 평가하는 가부장제에서 형성된 지배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성 규범’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남성성이란 남성에게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말이나 사고, 행동 등을 일컫는다.

“남성과 남성성을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 참가들에게 ‘진짜 남자’란 뭔지 떠오르는 대로 말하도록 했다. 결과는 대략 이랬다. ‘진짜 남자’란 강인하고, 대범하고, 결단력 있고, 생계를 부양하며, 성적으로 능동적이고, 경쟁적이고, 이성애자이고, 확신이 있다 등이다. 그리고 ‘진짜 남자’는 울지 않는다.” 트리흐트의 말이다.

이런 자질들을 망라한 남성성 규범은 젠더 기반 폭력(여성에게 신체적·성적·심리적 피해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히려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며, 심지어 권장하기까지 한다는 것이 트리흐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의 성폭력 범죄 가해자 10명 중 9명이 남성이고, 피해자 10명 중 9명이 여성인 현실(2021년 기준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은, 이 문제가 개인 간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범죄자 대부분이 남성이라고 해서 남성 대부분이 범죄자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라는 결론을 진지하게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강간 위험이 남성성 규범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진전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런 남성성 규범이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고, 선을 넘는 것이야말로 ‘진짜 남성’이라고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런 유해한 남성성 규범 때문에 ‘동의 없는 성관계는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남성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자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분법적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한 남성성 규범은 남성에게도 해롭다. 트리흐트는 “남성성 규범에 해당하는 자질들을 갖지 못한 남성들은 ‘사내답지 못하다’ ‘겁쟁이’ ‘배신자’ 등의 비난, 모욕을 받거나 배제되고, 심지어 폭력이라는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젠더 평등 실현에 반감을 드러내는 남성들은 출세하고 부유한 남성에게만 매력을 느끼는 여성들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는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 남성은 그래야 한다고 강요하는 남성성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트리흐트는 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이 남성에게도 이롭다고 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여 자녀를 키우는 가정에서) 여성과 남성이 모두 유급 노동에 참여한다면 남성 혼자 가족 생계를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는 남성에게 가사·돌봄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며 “이는 남성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성에서 해방된다면 남성은 그동안 남자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무시하고 부정하고 억누른 자질을 포용하고 발전시킴으로서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여성, 사랑하는 사람, 아이들, 세상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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