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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64살 막내 단원이 대본 심부름…새꿈연극단 ‘시니+컬’ 도전 [영상]

등록 2023-05-22 07:00수정 2023-05-23 11:21

강남노인종합복지관 ‘새꿈연극단’
주1회 연습은 삶에 활력소
한평생 인생 경험이 연기에 깊이 더해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자 웨이브 한번 갈게요.
우리 ‘때 민다’ 생각하시고 머리, 어깨, 가슴, 배, 호우!”

지난 1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 4층 ‘열린 학당’ 연습실. 가수 제시의 ‘눈누난나’ 노래에 맞춰 ‘새꿈연극단’ 소속 노인 배우 17명이 준비 율동에 한창이었다. 제시의 화려하고 매끄러운 춤과는 사뭇 다른, 어딘가 어설픈 ‘웨이브’였지만 노인 배우들은 연기 수업을 이끄는 예술강사 김보경(33)씨의 힘찬 구령에 맞춰 손끝과 발끝을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노래 2배속 한 것 같아.” “숨이 너무 차!” 연습실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지만, ‘호랑이 선생님’ 김씨의 “자신감은 눈빛에서 나옵니다, 집중” 한마디에 어르신 배우들의 눈빛이 다시 진지해졌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만 되면 꿈을 다시 품은 60∼80대 늦깎이 배우들이 이곳을 찾는다. 은퇴 이후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던 이들은 ‘젊었을 적 꿈은 배우였는데…’ 문득 든 생각에 ‘새꿈연극단’을 찾았다고 한다.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새꿈연극단은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의 ‘복지시설 이용자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중 하나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연기 수업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새꿈연극단처럼 노인들을 위한 연기 수업은 전국 노인종합복지관 27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연극을 시작한 지 9년 됐다는 박홍수(78)씨는 “연기가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며 “젊었을 때 연기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용기가 생겼다.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을 연기로 몸소 체험하는 게 너무 즐겁다”고 했다.

한평생 간호사와 간호대학 교수로 일했다는 박춘자(82)씨도 “원래 중학교 때부터 성우가 하고 싶어서 <한국방송> 성우 시험에도 응시했는데 떨어졌다. 사회생활 시작한 뒤 그 꿈을 다 잊어버리고 생활하다 이번에 연극을 시작했는데,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면서 인생을 간접 경험해보니 즐겁기도 하고, 때론 슬프기도 하더라.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이날 새꿈연극단은 연극 ‘이수일과 심순애’ 대본을 가지고 연습에 한창이었다. “가지 말아요 순애. 순애가 없으면 나는 숨조차 쉴 수가 없다오.”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는지 양원문(70)씨가 대사를 더듬거리자, 옆에 앉은 배우들이 대사에 목소리를 보탰다. “말없이 가는 길에 미워도 다시 한 번 아∼ 안녕.” 이수일과 심순애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고조되자 노인 배우들은 서로 맞춰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날 한 노인 배우는 대본 연습 도중 감정이 깊어져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뒤늦게 시작한 연기지만, 이들이 겪은 삶의 경험은 연기에 깊이를 더해준다고 한다. 나이는 손자뻘이지만 매서운 카리스마로 연기 수업을 이끄는 극단 신세계 소속 강사 김보경씨는 “7년 정도 어르신들께 연기를 가르치면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어르신들이 겪은 다양한 인생 경험들이 연기에 그대로 녹아 감동과 진심이 느껴진다”고 했다.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에선 가끔 토론도 열린다고 한다. 김씨는 “고전 대본들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어르신들에게 ‘놀부는 나쁜 사람이고, 흥부는 좋은 사람일까’ 같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능력이 안 되는데 흥부는 왜 자식을 줄줄이 낳아서 아내, 자식들을 고생시키냐’ 말씀하시기도 한다. 어르신들이 연기뿐만 아니라 대본을 가지고 활발히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지도 못한 점들을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올해 새꿈연극단이 완성할 작품은 뮤지컬 ‘흥부놀부전’이다. 김씨는 어르신 배우들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시니컬(시니어+뮤지컬)’이란 장르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최연소 단원이었지만, 올해 64살 신입 단원이 새로 온 뒤 막내 탈출에 성공한 주광재(70)씨는 “80대 언니들 심부름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프린트물 나눠주는 데도 일어나지 않고 앉아있을 수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우리 연극반에 80대 분이 몇 분 있는데, ‘나도 10년 뒤에 저렇게 열정적으로 삶을 살 수 있을까’, 정말 존경스럽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연극을 정말 권하고 싶다. 나도 10년 뒤엔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새꿈연극단의 ‘NEW 옹고집전’ 발표회. 강남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새꿈연극단의 ‘NEW 옹고집전’ 발표회. 강남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80 노인 배우들이 모인 ‘새꿈연극단’ 연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반석·조윤상 피디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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