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내 게시판에 붙어 있는 ‘미니 퀴어 퍼레이드’ 반대 대자보. 고병찬 기자
서울시가 오는 7월1일로 예정된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서울광장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은 가운데, 대학가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학내 ‘퀴어퍼레이드’가 휘청거리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성소수자 혐오가 대학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22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성공회대에서 오는 6월1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1회 성공회대 미니 퀴어퍼레이드’가 최근 연기됐다. 성공회대 학생들로 구성된 인권위원회에서 6월 ‘성소수자 인권의 달’을 기념하고, 서울시의 ‘24회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사용 불허 방침에 항의하기 위해 마련한 학내 행사였다. 그러나 학내외에서 행사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자 학교 쪽에서 개최 연기 또는 취소를 요구했다고 한다. 성공회대 관계자는 “메일과 국민신문고를 통해 다수의 반대 민원이 들어왔다. 학교는 반대 여론이 있으니 충분히 설득하는 절차를 거치자는 입장”이라고 했다.
실제 이날 성공회대를 방문해보니, 학교 곳곳에 반대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대자보에서 자신을 사회과학부 소속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축제에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다. 학교 내에서 축제가 진행된다면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과 압박을 받을 것이다. 내년 (정부의) 재정지원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학내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는 “성소수자 애들 정신검사 한번 받아야 한다”, “퀴어 퍼레이드 날엔 두창걸릴까봐 학식 먹으면 안 되겠다”라는 등 혐오 표현도 나오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학내에서 퀴어퍼레이드 개최 반대 서명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인권단체들은 서울시의 광장 사용 허가로 드러난 성소수자 혐오가 대학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조직위)은 “이번 서울광장 사용 불허 사례처럼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지만, 공적인 공간을 사용하려고 했을 땐 ‘불허’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학가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광장 사용 불허 규탄 대학가 무지개 행진’을 조직했던 권소원 서울대 학생·소수자 인권위원장은 “‘특정 의제’를 이야기하는 행사에 대해서만 사회적 합의나 검열을 거치도록 하는 것은 차별적”이라며 “일부 혐오 세력의 발언을 ‘여론’으로 취급해 행사에 영향력을 끼치는 순간 행정 절차라는 명목으로 혐오를 인정하는 꼴이라 유감스럽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3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통해 조직위가 제출한 사용 신고를 불수리했다. 조직위는 당초 오는 7월1일 서울광장에서 ‘제24회 서울퀴어퍼레이드’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서울시의 불허로 다른 장소를 물색 중이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2000년부터 매년 여름 성소수자 가시화, 인권증진, 문화향유, 자긍심 고취를 위해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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