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조합의 집행위임을 받은 집행관의 강제집행을 방해했다고 해서 조합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강제집행은 집행관 고유의 직무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종전 건물주 2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ㄱ, ㄴ씨 부부는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있는 길음1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구역에 있는 토지와 건물의 종전 소유주였다. 이 부부는 2018년 5월 보상액이 적다는 이유로 차량으로 건물 입구를 막거나 건물 2층 베란다에서 엘피지(LPG)가스통에 라이터를 들고 ‘다 같이 죽자’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조합의 명도 소송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을 방해한 혐의를 받았다.
1·2심은 이 부부가 조합의 정당한 이주·철거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하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조합의 집행위임을 받은 집행관의 강제집행 업무를 방해한 것은 곧 조합의 업무 방해가 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 강제집행은 집행위임을 한 조합의 업무가 아닌 집행관의 고유한 직무에 해당한다”면서 “ㄱ, ㄴ씨가 공소사실과 같이 조합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집행관은 집행관법에 따라 합리적인 재량권을 가진 독립된 단독의 사법기관”이라며 “채권자의 집행관에 대한 집행위임은 집행개시를 구하는 ‘신청’을 의미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민법상 ‘위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집행관의 법률상 지위를 확인함과 동시에 채권자의 집행관에 대한 집행위임은 법적 성격이 일반적인 민법상 위임이 아닌 절차상의 집행개시신청에 해당한다는 점을 최초로 선언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