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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집에서 14살 노견을 키우는 강아무개(30)씨는 지난 31일 대피 준비를 하라는 경계경보 발령 소식에 당황했다.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강아지와 ‘동반 대피’할 수 있는지를 몰라서다. 국가가 운영하는 대피소에는 반려동물 입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강씨는 “동반 입장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며 “강아지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다”고 했다.
반려동물 키우는 인구가 1500만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정작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대피소는 찾기 어렵다. 1일 에스엔에스(SNS)와 반려동물 커뮤니티 등에는 전날 경계경보 발령 뒤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하는 방법이나 반려동물용 재난 키트 꾸리는 법 등을 묻는 게시글이 속출했다. 이들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올라가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을 공유했다. 하지만 유일한 정부 지침에도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할 수 있는 집에서 가까운 대피시설(임시주거시설) 목록을 마련하라’는 권고가 전부였다.
서울 관악구에서 두 살 푸들을 키우는 신아무개(26)씨는 “강아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라 허둥지둥했다”며 “대피소가 안 되니까 동물병원이나 동물호텔 등을 찾아야 하는데, 재난 상황에서 누가 남아서 동물 관리를 해주겠나”라고 말했다. 7살 비숑을 키우는 백아무개(30)씨도 “대피소에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면 아예 대피를 포기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올라가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4월 국회에서 “반려동물 소유자 등은 재난 시 동물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반려동물 대피 지원 계획을 세우고 이를 수행하도록 지방자치단체에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은 빠졌다. 국가 및 지자체가 재난 시 반려동물의 임시 보호 공간을 제공하도록 하는 재해구호법 개정안은 2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동반 대피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대피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라며 “인간과 분리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한 만큼 지자체에 행정·재정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반려동물은 가족이다. 데리고 가지 못할 경우 대피를 포기할 수 있다. 사람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동반 대피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는 ‘자연재해 발생 시 개를 묶은 채 외부에 두는 행위’를 1급 경범죄로 처벌하는 법안이 제정돼있다. 반려동물과 동반 대피하는 ‘재난 대비 모의 훈련’도 실시한다. 영국과 호주, 일본 등에는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는 대피소가 별도로 마련돼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