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인천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 이 상병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어머니가 기자회견문 낭독 후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부적절한 인사 조치와 상관의 폭언으로 ‘자해 시도’까지 했던 병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군이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인권센터는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고 비판했다.
군인권센터는 8일 오전 ‘특전사9여단 병사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비편제 보직 배치, 간부 업무 전가 등으로 이아무개 상병을 병사들 사이에서 고립시켰고 신인성검사(심리검사) 결과 미확인, 면담 미실시 등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조기에 식별하지도 못했다”며 “자해 시도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이를 인지했는데도 방치에 가깝게 관리하다 결국 사망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 소속인 이 상병은 지난 4월1일 잠을 자던 중 원인미상의 심정지로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센터가 최근 확인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급성 약물 중독’이었다. 센터는 이 상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센터 설명을 종합하면, 수송병이있던 이 상병은 손목·발목 부상으로 전입 1개월여 만에 행정병으로 보직이 임의 변경됐다. 센터는 “선임들은 이 상병이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해 ‘눈치 보는 거 죽여버리고 싶다’는 등 폭언을 했다”고 유족의 말을 전했다. 또 간부가 해야 할 일까지 이 상병이 떠맡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급기야 이 상병은 지난 2월 손으로 유리창을 깨는 등 자해를 시도했다.
군도 이 상병의 상태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이 상병은 자대 배치 직후 실시된 신인성검사에서 자살위험군, 우울, 관계고립 등 문제로 ‘관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센터는 “그런데 소속 부대 중대장, 행정보급관 등은 면담은커녕 검사 결과지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자해 시도 후 병원에 입원했던 이 상병은 정신과 추가 입원 절차 등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부대로 복귀했다. 전출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 상병은 사망 당일 부모와 점심을 먹은 뒤 부대로 복귀해 14종류의 약과 에너지 음료를 한꺼번에 복용했고 생활관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군 관계자는 “수사 중이라 자세한 건 밝힐 수 없다”고만 말했다.
유족은 이날 회견에서 “소방관을 꿈꾸며 운동을 열심히 하던 아이였다. 아들은 병들어가고 있는데 군에선 부적합 심의도 바로 진행하지 않았다.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군이 기회를 놓쳤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육군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수사 진행 간 미흡한 부대관리와 일부 부대원의 부적절한 연행 등이 식별돼 관련자들을 법과 규정에 의거 처리할 것을 유족에게 설명해 드린 바 있다”며 “유족이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도 한점 의혹 없도록 투명하고 철저하게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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