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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신원불명 나체사진’…대법은 여성의 촬영 동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등록 2023-06-15 16:23수정 2023-06-15 19:57

인터넷에 신원불명 음란물 유포 처벌 기준 첫 제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에 떠도는 남녀의 나체사진을 유포했지만 사진 속 주인공이 특정이 안 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사건에서 대법원이 15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사진 촬영 경위와 내용을 볼 때 “적어도 여성이 사진 배포에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불법촬영물 유포도 성폭력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반포)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 대해 무죄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에 돌려보냈다. 원심(2심)은 촬영 대상자가 특정되지 않기에 사진이 동의를 받아 촬영·유포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촬영 대상자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을 때는 사진의 취득·유포 등이 이루어진 경위, 사진이 퍼뜨려졌을 때 피해자가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ㄱ씨는 지난 2021년 9월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 국내야구갤러리에서 ‘한국야동’이라는 제목으로 사진 한 장을 게시했다. 사진 속에서 남성은 옷을 벗고, 여성은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검찰은 ㄱ씨가 올린 사진이 음란물에 해당한다며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했지만 1심 법원은 “남성 성기가 보이지 않고 성관계가 연상되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며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검찰은 ㄱ씨가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사진을 유포했다며 불법 촬영물 유포 혐의를 추가했다. 2심은 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의 불법 촬영물 유포 혐의를 판단하려면 사진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지와 대상자에 의사에 반해서 촬영된 건지를 판단해야 한다. 2심은 “남녀의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것”이라면서도, “(촬영 대상자) 남녀에 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남녀의 의사에 따라 촬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이 사진을 남성이 여성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갈무리한 것으로 보고, “적어도 사진 속 여성이 이 사진의 반포(널리 퍼뜨려 알게 함)에 동의하리라고는 도저히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인터넷에서 떠도는 신원 불명의 사진에 대해서 “△촬영 대상자와 촬영자의 관계 및 촬영 경위, △그 내용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정도, △촬영 대상자의 특정 가능성, △촬영물 등의 취득·반포 등이 이루어진 경위 등을 종합해서 촬영 대상자의 동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촬영 대상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경우 그 의사에 반해 배포가 이뤄졌는지 여부의 판단 방법을 최초로 밝힌 사례”라고 설명했다.

여성단체들은 이번 대법원의 결정이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을 고려한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그동안 불법촬영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피해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음란물이냐 아니냐’가 쟁점이 되는 한계가 있었다”며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을 고려한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최나눔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법원은 피해자의 의사 확인이나, 신체노출 정도 수치심에 관해서 협소하게 해석해왔다”며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피해자의 불법촬영물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피해자에게 힘이 되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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