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의 휴대전화 잠금을 몰래 풀어 전 여자친구의 정보를 알아내면 처벌받을까? 이같은 행위가 ‘전자기록 등 내용 탐지죄’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단독 하진우 판사는 지난 15일 전자기록 등 내용 탐지 혐의로 기소된 ㄱ(30)씨에게 벌금 3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란 주로 경미한 범죄에 대해 유죄는 인정하지만, 형의 선고를 미루는 것을 말한다. 유예기간 2년이 지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한다.
지난 2020년 12월 ㄱ씨는 당시 남자친구 ㄴ씨의 휴대전화에 비밀번호를 몰래 입력해 그의 전 여자친구 연락처와 동영상을 봤다. 이 사실을 알게 된 ㄴ씨는 ㄱ씨를 고소했다. 검찰은 ㄱ씨의 행위가 형법상 비밀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벌금 3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란 사안이 경미할 때 검찰이 법원에 기소와 동시에 벌금형에 처해달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형법 제316조(비밀침해)는 봉해진 편지나 전자기록 등을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풀어 그 내용을 알아내면 3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ㄱ씨는 검찰의 약식기소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ㄱ씨는 재판에서 “ㄴ씨가 비밀번호를 알려줘서 사용한 것”이 라고 주장했다. ㄱ씨는 또한 ㄴ씨가 자신의 거짓말과 복잡한 이성 관계로 인해 깨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ㄴ씨가 ㄱ씨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줬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보면, “ㄴ씨가 자신의 전 여자친구의 자료가 남아있는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현재의 여자친구에게 선뜻 알려줬다고 이해하기 어렵고, 설령 알려줬더라도 통화목록,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등 다른 이성과의 접촉 여부를 불시에 확인할 수 있는 상태로 둔다는 정도의 의미로 한정해야 한다”고 돼 있다. ㄴ씨 모르게 휴대전화 잠금을 풀어 그 안의 모든 정보를 캐내는 것까지 용인했다고 봐선 안 된다는 판단이다. 다만 법원은 ㄱ씨가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유예했다. ㄱ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