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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지지부진 진실화해위, 제보자 색출엔 뜀박질 [현장에서]

등록 2023-07-04 12:26수정 2023-07-19 15:09

이옥남 상임위원 ‘한국전쟁 보고서 묵힌다’ 취재에
답변·해명 모르쇠…위원회 내부 제보자 색출 나서
6월21일 진실화해위 57차 전체위원회에서 발언하는 이옥남 상임위원(오른쪽). 왼쪽은 김광동 위원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6월21일 진실화해위 57차 전체위원회에서 발언하는 이옥남 상임위원(오른쪽). 왼쪽은 김광동 위원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 중에서 부역자를 가려내겠다는 이유로 진실화해위 이옥남 상임위원이 50여건 이상의 보고서를 두 달 넘게 묵혀두고 있다”는 기사를 작성하려고 이옥남 상임위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본인이 세운 방침인지 김광동 위원장의 지시인지 등을 묻기 위해서였다. 답이 없었다.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보도가 나간 다음날 ‘색출’ 소식이 들려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내부에서 기사를 제보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내겠다는 거였다. 예상대로였다. 이옥남 상임위원은 기자에게는 보도 내용에 관해 확인하거나 해명하거나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제보자를 색출해 처벌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제보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옥남 상임위원이 맡고 있는 조사1국 내부의 소통과 진실화해위 기본법에도 없는 ‘부역자를 가리겠다’는 발상이 문제라는 점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이옥남 상임위원은 최근 진실화해위가 펴낸 계간 소식지 <진실화해> 2023년 여름호(10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권위주의 독재와 민주화까지 겪은 우리가 스스로 과거의 부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거사 정리 작업을 한다는 건 높이 평가돼야 한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어두운 역사 속 희생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듯한 이 준엄한 질타를 접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화해위를 출입하는 3개월 동안 이옥남 상임위원은 ‘어두운 역사 속 희생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툭하면 ‘색출’ 운운하는 김광동 위원장과 한 편이 되어 진실화해위의 어두운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소식지 <진실화해>에도 나왔지만, 이옥남 상임위원이 이끄는 1소위원회는 위원회에 접수된 2만92건의 사건 중 83%에 해당하는 1만6737건을 조사하고 있다. 1소위원회가 관할하는 조사1국(조사1~4과)의 조사관들은 전국 각지의 희생자 명단을 파악하는 등 진실규명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가족들은 “왜 이렇게 진실규명이 더디냐. 보고서 쌓아놓고 묵히는 것 아니냐”등의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때마다 이옥남 상임위원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정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역자 처리지침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십건의 보고서를 묵혀두고 있었다.

사실 진실화해위 안팎에서는 이옥남 상임위원이 한국전쟁 사건의 조사를 지휘하고 소위원회에 안건을 올리는 일을 맡을 만한 인물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왔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한 전문성이 전혀 없다. 한국전쟁에 대해 연구한 적도 없고, 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을 헤아리는 활동에 참여한 적도 없다. 그는 1기 진실화해위(2005~2010) 조사관 시절 ‘파독 광부·간호사의 한국경제발전에 대한 기여 건’을 조사했다. 한국전쟁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차관급 공직자로서 민간인 학살 사건이든 적대세력 사건이든 진실화해위 기본법 취지에 맞게 진실규명하려는 공정함과 이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균형잡힌 시선만 있다면 전문성에 대한 우려는 불식할 수도 있다. 이런 기대는 “부역자와 순수한 희생자는 다르다.”(6월15일 한국전쟁피학살유족회 간담회), “부역혐의 희생자 중에서 부역자를 세심히 살펴 가리겠다”(5월25일 기자간담회)는 말들 속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지난 5월24일 열린 55차 전체위원회에서 베트남전 학살 사건 조사 개시건을 논의할 때는 피해자의 국적과 혈통을 거론하며 각하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조사보고서 보류건이 드러났다. 치명적이다.

전문성·공정성이 없다면, 마지막 기대하는 건 감수성이다. 이옥남 상임위원은 한국전쟁 유가족들을 볼 때마다 “열심히 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야근을 하면서 조사보고서를 읽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책상에 앉아 자료만 보면 역사와 희생자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유가족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려는 노력은 거의 안 하면서 말이다.

그는 한국전쟁 유가족들을 만날 때면 주로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 있는 진실화해위 사무실로 부른다. 6월15일 한국전쟁피학살자유족회원들과의 간담회도 사무실로 불러서 했고, 7월6일에는 또 다른 단체 회장단을 서울로 불러서 만난다. 유가족들을 현장에 내려가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올해 상반기에 진실화해위가 주최한 전국 7개 지역의 유해발굴 관련 각종 행사(개토제, 유해발굴 언론공개, 봉안식)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말로만 유가족들을 배려하는 시늉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다시 한번 그의 말을 음미해 본다. “어두운 역사 속 희생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본인 입으로 남들에게 할 소리가 아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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