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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입양인 위한 ‘뿌리의집’ 지킨 20년…“출생통보제 숙제 하나 마쳐”

등록 2023-07-10 06:00수정 2023-07-10 16:57

김도현 목사, 가족 찾는 국외 입양인 숙소 운영
미신고 아동 불법입양 손쉽게 노출 우려 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뿌리의집에서 열린 20주년 기념식. 박시은 교육연수생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뿌리의집에서 열린 20주년 기념식. 박시은 교육연수생

해외 입양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뿌리의집’이 20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곳을 거쳐간 해외 입양인만 5천여명. 뿌리의집은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고 한국 땅을 밟았으나 연고가 없어 거처를 마련하기 어려운 입양인들이 임시 거주할 수 있는 숙소로, 해외 입양인들의 쉼터이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곳이었다. 덴마크 입양인 안미선(55)씨는 “서로 누군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등 여러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계기가 되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20년간 뿌리의집을 지켜온 김도현(69) 목사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뿌리의집 20주년 기념식에서 뿌리의집 공식 종료 사실을 알렸다. 지난 4일 미국 입양인 가족이 마지막으로 짐을 싼 뒤부터 더는 새 손님을 받지 않았다. 때마침 지난달 30일 병원에서 출산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이들이 과거부터 손쉽게 불법 입양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김 목사는 “숙제 하나가 끝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양 제도와 관련해 우리가 가장 크게 요구해온 것이 ‘출생통보제’였다”며 “해외 입양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뿌리의집에서 만난 김도현 목사. 곽진산 기자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뿌리의집에서 만난 김도현 목사. 곽진산 기자

김 목사는 1993년 스위스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중 현지에서 한국계 입양인이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입양인들을 9년간 돌봤다. 그 일이 뜻하지 않은 그의 ‘경력’이 됐던 차에 김 목사는 김길자 경인여대 명예총장 등으로부터 뿌리의집 운영을 제안받았고, 그 뒤로 20년이 흘렀다. 김 총장은 2003년 자택을 무상으로 내놓으며 뿌리의집 기반을 마련했다. 뿌리의집 하루 숙박에 필요한 돈은 2만원. 게스트하우스 운영에 충분한 돈은 아니었지만 후원금으로 적자를 충당해왔다. 하지만 김 총장의 사정으로 뿌리의집 추가 임대 연장이 이뤄지지 않고, 김 목사 역시 고령으로 “(게스트하우스 운영이) 힘에 부쳐” 뿌리의집은 문을 닫게 됐다.

수십년간 입양인들을 지켜보며 해외 입양인들의 권리 보호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김 목사는 출생통보제는 환영하면서도, 출생통보제와 함께 정부가 추진하는 ‘보호출산제’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출생통보제의 보완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보호출산제'는 익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지만, 아동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반대 여론도 거세다.

김 목사는 미혼모 등 위기임산부를 위한 사회적 보호 시스템이 취약한 상태에서 추진되는 보호출산제는 “성급한 일”이라고 지적한 뒤 “충분한 위기 지원 체계가 없는 상태라면 보호출산제 익명 출산은 간편한 해결책이 돼버릴 수 있다.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고 말했다.

뿌리의집을 떠나는 김 목사는 인근에 10평 남짓 사무실을 임대하고, 출생통보제 이후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사무실이 어떻게 운영될지 그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김 목사는 “청운동을 떠나도 공허함을 느낄 여유는 없다”며 “해외 입양인들에겐 아직도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해외입양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 뿌리의집이 지난 8일 운영을 공식 종료했다. 사진은 뿌리의집 입간판. 곽진산 기자
해외입양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 뿌리의집이 지난 8일 운영을 공식 종료했다. 사진은 뿌리의집 입간판. 곽진산 기자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박시은 교육연수생 sigua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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