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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신경쓰지 마셔, 여기 땅 파면 다 시체야” [본헌터⑦]

등록 2023-07-17 11:00수정 2023-07-17 11:28

[역사 논픽션 : 본헌터⑦] 신도95-1, 신도95-2
신도리코 직원들도 전혀 모를, 28년 전 아산공장 건축현장의 비밀
2023년 3월 충남 아산 배방읍 공수리(순천향로) 산110에서 62구의 참혹한 유해가 발굴되었다. 그곳으로부터 북쪽으로 340미터 떨어진 배방읍 공수리 883에 신도리코 아산공장이 있다. 28년 전 이곳에서 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사진 네이버 지도 갈무리
2023년 3월 충남 아산 배방읍 공수리(순천향로) 산110에서 62구의 참혹한 유해가 발굴되었다. 그곳으로부터 북쪽으로 340미터 떨어진 배방읍 공수리 883에 신도리코 아산공장이 있다. 28년 전 이곳에서 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사진 네이버 지도 갈무리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내 이름은 인욱이다.

건축에 관계된 일을 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하자마자 한 대기업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1992년에 입사했다. 건축 현장의 공정관리, 비용처리를 주로 맡았다. 충남 아산에서도 그랬다. 1995년 1월부터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883에 신도리코 아산공장 본관과 부대 건물을 짓기로 돼 있었다.

나는 건축부 대리로서, 건축현장을 담당하기 위해 내려갔다. 신도리코는 복사기와 복사지, 카메라를 만드는 기업이다. 한국의 신도와 일본의 리코가 합작했다. 지상 4층과 지하 1층짜리 본관, 그리고 지상 1층 규모의 복사지 공장과 파지 처리장을 부대건물로 짓기로 했다. 기공식 직후 초기엔 집에도 못 들어가고 새벽까지 일하곤 했다. 새싹이 돋아나고 봄바람이 강하게 불던 4월 어느날이었다. 1995년 4월.

먼저 A4-5, A5-4, A17, A18, A19 님들의 명복을 빈다. 완전유해 또는 부분유해의 형태로 2023년 3월 성재산에서 발굴된 62구 영령들의 안식을 빈다. 그렇다. 그들의 식별번호 앞에는 ‘성재산’이 붙어야 한다. ‘성재산A4-5, 성재산A5-4, 성재산A17, 18, 19’가 정확한 이름이다. 얼마 전 이들이 나온 뉴스를 보고서야 28년 전 내가 목격한 장면들의 비밀을 풀게 되었다. 그것은 평생 내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은 기억이었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이때 속 시원하게 말할 기회를 얻어 감사하다.

1995년 4월 아산의 그 공사현장은 2023년 3월 유해가 발굴된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110 성재산 기슭으로부터 북쪽 340m 거리에 있다. 28년 전 그날로 돌아가본다.

오전 10시경부터 부대 건물 기초 공사를 위해 땅을 팠다. 굴삭기를 동원해 설계도면에 맞춰 작업하는데 흙 속에서 뼈가 나왔다. 인부들이 말했다. “개를 잡아먹었나?” 뼈 몇개를 주워서 밖으로 내던졌다. 지금 생각하면 동물 뼈가 아니었다. 사람 뼈였다. 정강이뼈.

12시경 낮잠을 자려고 누웠다. 한 시간쯤 뒤 인부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사람이 나왔다고 했다. 원래는 굴삭기로 파야 하는 곳이었다. 그 영혼들이 으스러지지 않으려고 힘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서쪽 가장자리 기둥 자리에 가로세로 폭 1m, 깊이 1m로 땅을 파는 공사였다.

벚나무들이 즐비하게 심어진 언덕이었다. 굴삭기의 버킷이 목적 지점에 닿지를 않았다. 무한궤도가 아닌 바퀴로 된 굴삭기여서 그랬을 거다. 할 수 없이 인부들이 삽으로 한 시간 넘게 파다가 사람이 나왔다며 나를 부른 거였다. 벚나무 뿌리 사이에서 머리뼈가 있는 유해 두 구가 나왔다. 깜짝 놀랐다.

단순하게 매장된 주검이 아니었다. 앞을 향해 처참한 형태로 고꾸라져 있었다. 얼굴로 봐서는 건장한 남자 같았다. 턱뼈가 굉장이 커 보였다. 치아가 단단하고 치열도 고른 편이었다. 머리뼈에 흙이 많이 차 있었지만 함몰이 안 됐다. 한 유해의 척추뼈엔 붉은 핏기가 남아있었다. 배수가 잘되는 양질의 땅 덕분인지 몸의 모든 뼈가 원형대로 있었다. 게다가 구덩이 옆으로도 다른 이의 것으로 보이는 뼈가 조금 보였다.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유해의 모습이 너무 안 좋아 뭔가 밝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분은 모르지만, 6.25 전사자가 아닐까 싶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다들 말렸다. “신경 쓰지 마셔. 아산 땅 파면 다 시체야.” 아산 토박이라는 수위장 어르신이 말했다.

60대였던 아산 출신 인부 두 명도 별스럽지 않은 듯 말했다. “전쟁 때 안 돌아온 사람들이 한둘이야? 이 동네는 저승골이야. 원래 이쪽으로 오줌도 안 눈다잖아.” 기둥 자리 옆에 삐죽 나온 뼈는 더는 파지 않기로 했다. 바닥에 공구리(콘크리트)를 쳤다. 그리고 유해를 당일에 처리하기로 했다. 건축 현장에 뼈를 보관해놓을 수는 없었다.

1995년 4월 고꾸라진 상태의 유해 두 구가 나온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883 신도리코 아산공장 현장. 사진 고경태
1995년 4월 고꾸라진 상태의 유해 두 구가 나온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883 신도리코 아산공장 현장. 사진 고경태

신도리코 아산공장 현장에서 나온 유해를 묻은 곳으로 추정되는 성재산 기슭. 인욱은 이곳을 다시 찾았지만 정확한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다. 사진 고경태
신도리코 아산공장 현장에서 나온 유해를 묻은 곳으로 추정되는 성재산 기슭. 인욱은 이곳을 다시 찾았지만 정확한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다. 사진 고경태

묻어주기로 했다. 작업자들에게 광목천을 사오게 했다. 인부 두 명은 유골 수습을 많이 해 본 눈치였다. 능숙하게 부위별로 뼈를 가지런하게 정리했다. 다만 두 유해를 정확하게 따로 나눌 수 없었다. 광목에 하나로 싸서 들고 성재산 정상 쪽으로 올라갔다. 길도 없었다. 나무를 헤치며 길을 만들었다. 전망이 좋다 싶은 능선에서 자리 하나를 정했다. 인부 두 명이 땅을 팠다. 굵은 모래지대라 삽날이 잘 안 들어갔다. 40~50㎝를 파 내려가는데 한 시간은 걸렸다. 광목천에 담긴 뼈를 내려놓고 근처에서 흙을 퍼와 50㎝ 높이의 봉분도 만들었다. 인부들이 말했다. “구석에 묻혀있다가 이런 자리로 왔으니 행복할 거예요. 두 분이 오래오래 잘 사십시오.” 오후 4시경 인부들과 함께 망자들에게 절을 했다. 막걸리도 뿌려주었다.

유품도 기억한다. 탄피가 4개 나오고, 신발 밑창 고무가 나왔다. 밑창은 썩어 70% 정도만 남아 있었다. 탄피는 한때 사무실에 두었다. 공이가 있는 부분을 사포로 문질러보았더니 글자가 보였다. 유에스에스알(USSR).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소련제 소총의 탄피였다. 한 달후에 버렸다. 이걸로 사람을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불법처형된 이들이 묻힌 2.2 km 길이의 교통호가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충남 아산시 배방읍의 성재산은 신도리코 공장 부지의 콘크리트 건물을 만나면서 끊긴다. 사진 고경태
불법처형된 이들이 묻힌 2.2 km 길이의 교통호가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충남 아산시 배방읍의 성재산은 신도리코 공장 부지의 콘크리트 건물을 만나면서 끊긴다. 사진 고경태

그때 작정하고 부근의 땅을 파헤쳤으면 유해가 더 나왔을 것이다. 주변 사람 모두들 잊으라고 했다. 기자로 일하는 친구들한테도 이야기를 해보았으나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023년 3월 성재산 유해발굴 뉴스를 보며 그 주검들이 군인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발굴단장으로 일하신 교수님을 수소문해 전화를 드렸다. 28년 전 일을 소상하게 전했다. 그 뒤 아산의 시민단체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장 지점을 같이 확인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산에 내려갔다. 그 공장이 준공된 게 1996년 3월이니, 27년 만이었다.

완전히 지형이 달라져 있었다. 정확한 지점을 찾기 힘들었다. 옛 기억을 되살리며 산 쪽으로 올라갔으나, 그곳엔 어마어마하게 큰 묘지가 새로 세워져 있었다. 유해가 발굴됐던 자리는 증축이 돼 있었다. 내가 참여해 지었던 공장은 기계 하나 없이 텅 빈 상태였다. 매각한다고 했다.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했다. 지금도 아쉽다. 유해를 묻은 자리에 표식이라도 해둘걸,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유품이라도 보관해둘걸.

나의 고향은 김천이다. 김천에서도 여러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 사촌 중 한 명은 6·25 때 인민군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늘 연좌제를 걱정했다. 나는 1980년대 중반 사관학교를 지망했지만 떨어졌다. 인연이 닿지 않은 건지, 연좌제였는지는 모른다. 나는 사립대학 건축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렇게 돌아돌아 28년 전 나와 성재산의 그들은 운명적으로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신도95-1, 신도95-2.

발견된 공장 이름과 해를 넣어 그들의 이름을 지어보았다. 척추에 붉은 핏기가 남아있던 유해를 신도95-1로 한다. 나머지가 신도95-2다. 지금 다시 성재산을 뒤지는 사람들이 당신들을 기어코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빈다. 식별번호로나마 당신들의 존재를 알려 기쁘다. 안녕 신도95-1, 신도95-2.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맡고 있다.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라는 책을 썼다. 2000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군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고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베트남어판을 냈다. 베트남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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