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시의회 주도로 의결한 ‘부산시 생활임금조례’ 개정안이 무효라며 대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생활임금조례가 지방자치단체장 고유 권한인 예산안 편성권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부산시장이 부산시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생활임금 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에서 지난달 13일 원고(부산시) 패소로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생활임금은 물가수준 등을 고려해 노동자의 최저 수준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지난 2018년부터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해 왔다.
부산시의회는 2022년 3월23일 이번 재판의 대상이 된 ‘부산광역시 생활임금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의결했다. 부산시장이 생활임금 적용 대상이 되는 전 직원의 호봉을 다시 산정해 생활임금을 반영하는 것이 개정 조례안의 핵심이다. 생활임금 적용 대상은 부산시 소속 노동자뿐 아니라 공공기관과 그 자회사 소속 노동자, 부산시로부터 사무를 위탁받은 기관·단체·업체 노동자까지 규정했다. 높은 연차 노동자들도 생활임금 도입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다만 실제 적용 대상은 부산시장이 생활임금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했다.
부산시장은 조례안이 시장의 고유 권한을 침해한다며 재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같은 해 6월 조례안을 원안대로 재의결했고 부산시는 조례안이 위법해 무효라며 대법원에 소송을 냈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 의결에 대한 소송 제기는 대법원에 할 수 있고 단심제로 심리한다.
재판 과정에서 부산시 쪽은 “개정 조례안이 시장의 고유권한인 예산안 편성권과 인사권을 침해하며 조례로 정할 수 있는 사항을 초과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방자치단체장이 임금 등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심히 침해하는 것”이라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부산시 쪽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 사건(생활임금) 조례안은 생활임금 반영 효과가 고르게 미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고 구체적인 생활임금 결정이나 임금 상승분의 결정은 여전히 원고(부산시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며 예산안 편성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인사권 침해 주장에 대해서는 “원고의 권한을 일부 견제하려는 취지일 뿐 임금 결정에 관한 고유 권한에 대해 사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결국 “생활임금 지급 업무는 주민이 기본적인 생활 여건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복지에 관한 사업”이라며 규정하며, 개정 조례안의 효력을 인정했다.
이번 사건은 생활임금 지급에 관한 조례가 지방자치단체장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지 여부, 상위 법령을 위반하는지에 관해 최초로 판단한 사건이라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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