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와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2020년 11월 서울 중구 소공동 한진칼 앞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에게 사내 성폭력 사건의 직접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사내 성폭력 사건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고 사직 처리한 대한항공에 법원이 “관리·감독 책임을 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0-2부(재판장 김동현)는 상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ㄱ씨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한항공이 ㄱ씨에게 18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1심 손해배상금 1500만원보다 늘어났는데, 대한항공이 가해자 징계를 하지 않는 등 관리·감독 미이행 책임까지 인정됐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직원 ㄱ씨는 지난 2017년 상사 ㄴ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공항 보안사고와 관련해 팀장인 ㄴ씨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ㄱ씨는 2019년 12월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대한항공에 요구했지만, 회사는 별도의 조사나 징계 없이 ㄴ씨를 ‘사직 처리’했다. ㄱ씨는 2020년 7월 △성범죄 방지 주의 의무와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대한항공에 성범죄 방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만 물어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한항공은 불복해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회사의 관리·감독 책임까지 인정했다. 대한항공이 ㄴ씨 면직처리를 징계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대한항공이 ㄴ씨를 공식 징계 절차에 회부하지 않았으나 면직을 시킨 건 유리한 사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선고 뒤 법정에서 나온 ㄱ씨는 눈물을 흘렸다. ㄱ씨를 지원해온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대한항공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 가해자를 사직하면서 피해자 보호조치조차 하지 않았다. 직장 내 성범죄 사건에서 징계 등 절차를 제대로 지켜야 2차 피해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사직처리만으로 사업주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은 매우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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