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10일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발언의 핵심 근거로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내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 전 대통령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부인해 정 의원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쓰이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이 했다는 말은 객관적 증거와도 배치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가 작성한 정 의원 유죄 판결문을 보면 정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진실이라고 믿었다며, 그 근거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대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한겨레 인터뷰 등을 제시했다. 2017년 9월 그는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 죽음을 언급하며 “권양숙씨와 아들이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씨로부터 수백만불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적었다가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2017년 2월16일 이 전 대통령을 만나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날 권 여사는 집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집에 없었다’를 ‘가출했다’로 확대해석해 옮겨 적은 셈이다.
그러나 ‘집에 없었다’ 주장조차 사실무근으로 파악됐다. 박 판사는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권양숙 여사·사저 근무 경호원의 진술과 김해서부경찰서 조사 결과, 사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영상 등을 확인해 “부부싸움”, “가출”, “혼자 남아 있다가 자살” 등의 문구가 모두 거짓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정 의원은 2017년 11월8일 이 전 대통령을 만나 피소 사실을 언급했고, 이에 이 전 대통령이 ‘왜 겁나냐? 재판이 걸리면 당시 경호원들 증인으로 다 소환하면 될 것 아니야?’라고도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변호인을 통해 “(집에 없었다 발언 포함)이같은 내용을 이야기한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정 의원이 ‘부부싸움’이라고 적시한 근거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터뷰였다. 문 전 대통령은 2009년 6월2일 노무현 청와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한겨레와 인터뷰했는데, 검찰 소환 조사 뒤 “노 전 대통령이 매우 괴로워하셨다”고 털어놓으며 “권 여사님은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 같이 있으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들어오면 다른 자리로 가곤 했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보고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할 무렵 부부 사이에 가정불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박 판사는 “피고인(정 의원)이 참고했다는 자료들은 글 내용을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박 판사는 ‘죄질이 좋지 않은 점’과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실형 선고 이유로 들었다. 정 의원이 거칠고 단정적인 표현으로 가득 찬 거짓 글을 작성해 페이스북에 올렸고, 권 여사 등 유족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판사는 검찰의 이해할 수 없는 장기수사도 꼬집었다. 권 여사와 건호씨는 2017년 9월 정 의원을 고소했다. 1년 뒤인 2018년 8~9월에야 정 의원을 ‘우편조사’한 검찰은 다시 1년여가 지난 2020년 1월 정 의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피의자 신분 조사했다. 지난해 9월에야 벌금 500만원 약식 청구하며 5년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법원은 사건 심리가 더 필요하다며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느림보 수사로 이 사건 처분이 늦어지면서 정 의원은 또다른 형사사건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 기소가 빨리 이뤄졌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박 판사는 범행 시점과 판결 선고 시점이 6년 가까운 시간적 간격이 생긴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검찰의 매우 느린 수사 진행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박 판사는 정 의원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하고 모든 양형 조건을 종합해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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