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에서 인공지능(AI)으로 재현한 학생 독립운동가 김찬도 선생이 졸업사를 하고 있다. 빙그레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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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학생 독립운동가 대표로 졸업사를 맡게 된 김찬도입니다. 이 뜻깊은 졸업식에 함께했던 동지들을 대표하여 이야기를 전하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 동지여 보고 있는가. 우리 대한민국이 독립을 했다. 퇴학을 당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어려움도 있었고, 학창시절에 대한 아쉬움도 남아있을 터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그런 괴로움과 마음 따위야 다 무용합니다. (…) 동지들이여, 우리를 위해 마련된 이 졸업을 함께 축하하세.”
지난달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단상에 학생 독립운동가 김찬도 선생이 교복은 입은 채 학창시절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1994년 세상을 떠난 그의 학창시절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현한 것이다. 빙그레가 국가보훈부와 함께 진행한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 정학 등의 징계를 받아 학창 시절을 일제에 빼앗긴 학생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명예 졸업식’이다.
한 달 전 진행된 이 행사의 영상은 78주년 광복절을 맞아 지난 11일 빙그레 유튜브 채널에 올라왔고, 15일 오전 9시 현재 160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 영상엔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늦은 졸업식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등의 댓글이 계속 올라오는 중이다.
인공지능(AI)기술로 재현한 학생 독립운동가 학창시절 모습. 빙그레 유튜브 채널 갈무리
빙그레는 공훈전자사료관에 퇴학·정학 등의 징계 기록이 있는 학생 독립운동가 222명 중 복원 가능한 사진 자료가 있는 94명을 명예졸업식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국가보훈부가 발굴해 공개한 일제강점기 학생 독립운동가 2596명의 학적부 자료도 대상자 선정에 밑돌을 놨다. 국가보훈부는 2596명의 학적부를 분석해 3·1운동, 6·10만세운동, 함흥학생사건, 동맹휴학, 노다이사건 등 항일운동으로 1033명이 퇴학을 당했고, 565명이 무기정학, 483명이 유기정학을 받았다고 밝혔다. 훈계, 무기근신 등의 징계를 받은 학생 독립운동가도 수백명에 달했다.
7월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 독립운동가 후손들. 빙그레 유튜브 채널 갈무리
7월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에서 학생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고 있다. 빙그레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들 대부분은 학생 신분에도 분연히 일어나 일제에 대항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며 졸업을 하지 못했다.
독립유공자 공적정보를 보면, 졸업사를 한 김찬도 선생은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19살) 중인 1926년 여름, 같은 학교 학생 10여명과 함께 항일학생결사 ‘건아단(健兒團)’을 조직했다. 조선인에 의한 조선농촌개발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농촌을 중심으로 야학을 설립해 항일 운동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1928년 9월 회원 모두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김찬도 선생은 검거된 날 바로 퇴학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18개월 동안 고문을 당했고, 1930년 치안유지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학생 독립운동가 서귀덕 선생은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가두시위로 시작돼 전국으로 번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당시 그는 16살이었다. 명예 졸업식 영상에서 서귀덕 선생의 후손은 당시 퇴학 처분에 대해 “꿈이 다 좌절된 것 아니냐”고 했다.
7월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에서 학생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고 있다. 빙그레 유튜브 채널 갈무리
7월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에서 학생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한군데 모였다. 빙그레 유튜브 채널 갈무리
빙그레는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명예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전달했다. 졸업앨범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작업을 통해 졸업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사진을 실었다.
빙그레는 “학생 독립운동가분들이 응당 받으셔야 했을 졸업장과 어여쁜 학창시절이 담긴 졸업앨범을 뒤늦게나마 전해드리며 숭고한 뜻에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영상에서 김찬도 선생의 딸 김은경씨는 인공지능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정말 아버님 학생 때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고? 가능해요, 그게?”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아버지의 모습을 본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늦은 졸업식’이란 표현에 대해 ‘늦지 않았다’며 감사를 전했다. “늦긴 뭐가 늦어요. 잊지 않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